굿모닝보청기안양만안구청센터

안양보청기, 보청기는 소리를 잘 듣게 해주는 의료기기이고 보청기센터 원장을 소리를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취몽인 2022. 6. 24. 15:15

찬란한 과거를 듣는 일

장마비가 주춤한 금요일입니다. 후덥지근하고 우중충한 말씨여서 금년 들어 처음으로 사무실에 에어컨을 켰습니다. 움직이면 땀이 줄줄 흐르니 아침 운동도 좀 부담스럽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걱정입니다. 사람이 참 간사합니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추위에 떨며 사무실 식물들이 동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어느새 더위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운동하고 와서 지난 겨울 얼어 죽은 황금죽을 캐낸 빈 화분에 이름도 모르는 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이 친구는 지난 겨울 누군가 길가에 버린 것인데 제가 사무실에 들고 와서 그동안 키웠습니다. 거의 시들어가던 녀석이 겨울을 잘 버텨내더니 제법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큰 화분에 옮겨 심고 떠난 황금죽 대신 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보청기센터를 운영한 지 일년쯤 되니 이 나무처럼 친해진 고객들이 생겼습니다. 조금 아이러니 한 것은 친해진 고객들의 경우 보청기를 맞추시고 지속적으로 불편을 호소하신 분들입니다.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많고 불편도 많아 자주 센터를 찾아오시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특별한 점은 대부분 남자 어르신들입니다. 보청기 고객의 남녀 성비는 거의 비슷한데 여자 어르신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반면 남자 어르신들은 좀 친해지고 나면 조금씩 속내를 털어놓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친해지는 것이지요.

유난히 자주 찾아오시는 분은 네 분 정도입니다. 연세도 거의 비슷한데 모두 팔순 초입입니다. 그 중 한 분은 저희 사무실 근처에 사는데 외출할 때 오며 가며 들러 보청기 소리 조절도 하시고 아들 딸 험담도 하고 가십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시는 것 같습니다. 또 한 분은 조금 떨어진 군포에 사는 분인데 귓속에 분비물이 많아 보청기 리시버가 자주 막힙니다. 그때마다 청소를 위해 찾아오십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십니다. 또 한 분은 역시 근처에 사는 분인데 보청기는 예전에 다른 곳에서 하셨는데 관리를 받으러 저희 센터를 찾으십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히 들러 요즘은 손님이 좀 많으냐 물으시고 잘 돼야할 텐데 하며 걱정을 해 주십니다. 제가 좀 과문한 편이라 살갑게 대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오신 분은 역시 좀 떨어진 곳에 사는 분이십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사는 분인데 작년에 국가지원금으로 보청기를 맞췄습니다. 양쪽 귀가 모두 좋지 않은데 형편상 한쪽 밖에 못하신다고 해서 저희 굿모닝보청기센터에서 사정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조금씩 모으고 있는 소리나눔기금으로 나머지 한쪽 귀 보청기를 해드렸습니다. 그 일에 늘 고마워하시며 가끔씩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가곤 했습니다. 오늘도 한쪽 보청기가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손도 볼 겸 들렀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오셨을 때 제가 낸 시집을 한권 드렸는데 다 읽었다며 좋아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자신도 문청 시절이 있었다며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르신은 한 때 영화배우 지망생이었습니다. 충무로에서 장동휘, 박노식 같은 액션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더군요. 연세가 든 지금도 키가 훤출 하시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절은 시절 꽤나 미남이었을 것 같았습니다.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나름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영화배우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대신 영화판을 전전하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하고 이혼도 세번 했다며 혀를 찼습니다. 모두 사별이 아닌 이별이었다니 어쩌면 여성편력이라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던 그 화려했던 시절은 다 지나가고 지금은 가곡들과 떨어져 혼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으니 인생 참 허망하다 했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옛날 이야기는 제 약속 시 간 때문에 멈췄습니다. 다음에 점심이나 같이 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도 하자고 하셔서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외출도 어렵다는 어르신 아파야 빨리 죽을 수 있으니 아픈 것도 나쁘지 않다며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연 많은 어르신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었을까? 마침 보청기센터 원장이면 자기 말을 들어줄 것 같으니 일부로 찾아오셔서 옛 이야기를 하셨겠지요. 다음 주에는 나오시라 해서 추어탕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면서 또 이야기를 들어드려야겠습니다.

보청기는 소리를 잘 듣게 하는 의료기기입니다. 보청기센터 원장도 소리를 잘 들어주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어르신의 말씀을 듣는 일이 그리 불편하지 않으니 이 직업이 제 적성에 맞는 일이다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