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왜 두 개일까요
아내가 며칠 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제일 격하게 반겼고 내색은 안 했지만 나도 반가웠다. 허전했던 집안이 이제서야 꽉 찬 느낌이다. 아이들 다 출가하고 둘만 남은 집에서 아내의 빈 자리는 제법 컸다. 결혼한 지 35년, 우리 부부가 어느새 한 쌍으로 사는 일에 익숙해진 탓이다.
유구한 동양철학의 뿌리인 주역은 음양의 조화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서양철학의 이원론이 이항의 대립을 역사의 추동력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주역은 이항의 조화를 자연 질서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존재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합일을 강조한다. 배타가 아니라 상생을 말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각박한 세계를 개선할 수 있을 정신으로 새삼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음양 조화를 강조하는 주역의 모습이 가장 구체적, 보편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일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쌍의 부부로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한 쌍의 부부는 인류라는 존재의 근간이고 조화와 발전이라는 역사의 멈추지 않는 양 수레바퀴다. 남자는 양, 여자는 음 같은 구분의 의미보다 양과 음이 있어 조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삼 신비롭기까지 하다.
우리 몸에도 두 개가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양팔과 양다리가 그렇고, 머리로 범위를 좁히면 두 눈과 콧구멍도 둘이다. 그리고 귀도 얼굴 한가운데 솟은 코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떨어져 쌍으로 있다. 콧구멍이 둘인 이유는 잘 알지 못하지만 눈이 둘인 이유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미간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있는 눈은 피사체와의 거리감 파악을 위해 두 개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해왔던 한 눈을 감고 눈앞의 젓가락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실험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두 눈으로 봐야만 내 앞의 사물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 존재하는 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귀는 얼굴을 사이에 두고 15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어딘 가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두 귀에 각각 도착하는 시간에 차이가 생긴다. 소리 나는 쪽에서 가까운 귀에 소리가 먼저 도착한다. 시간 차이뿐만 아니라 가까운 쪽 귀에 들리는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린다. 이 차이로 우리 뇌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알게 된다. 즉 두 귀가 있는 덕에 소리의 방향성을 파악하게 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오디오의 스테레오 시스템이 개발되기도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오른쪽 귀는 높은 소리를, 왼쪽 귀는 낮은 소리를 더 잘 듣는다고 한다. 왼쪽 뇌(언어 담당)로 정보를 전달하는 오른쪽 귀는 말소리를, 오른쪽 뇌(음악 담당)로 정보를 전달하는 왼쪽 귀는 음악소리를 더 잘 듣는다고 한다. 단순히 쌍으로 있어 소리를 입체적으로 듣는 역할을 넘어 두 귀는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진 음양 조화의 쌍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눈이나 코보다 귀가 두 개인 이유가 더 분명한 셈이다. 그 외에도 요즘과 같이 펜더믹 시대를 살면서 또다른 피부처럼 되어버린 마스크를 귀가 양쪽에 없다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안경은 또 어떻게 쓸 것인가.
둘이어서 하나보다 좋은 점은 그 밖에도 많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도 남은 한 사람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보살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에서 쌍으로 존재하는 기관들은 하나의 기능이 다 해도 남은 하나가 최선을 다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려고 애쓴다. 신장에 이상이 생겨 이식이 필요한 부모님에게 아들이나 딸이 자신의 신장 하나를 이식해 드리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둘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귀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이유로 한 쪽 귀의 기능을 잃어도 남은 한 귀로 소리를 듣고 살 수가 있다. 물론 완벽한 소리를 듣기에는 부족하지만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살아갈 수 있다. 양팔이나 다리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말이 있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는 속담이다. 하지만 실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귀는 입력만 가능할 뿐 출력은 불가능하니까. 귀는 세상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통로이다. 다양한 소리를 두 귀는 역할을 나눠 듣기도 하고 힘을 합쳐 더 나은 정보로 만들어 듣기도 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좌우에서 안테나처럼 귀는 펼쳐져 정보를 수집한다. 결코 쉬지도 않는다. 두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보다 더 다양하고 더 먼 세상이 귀를 통해 들어온다. 아무리 해도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는 두 귀이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당신을 지킨다. 당신은 이 소중하고 부지런한 귀를 위해 그동안 어떤 조그만 배려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양손을 들어 두 귀를 쓰다듬어 보시라. 고맙다고 한 마디쯤 해보시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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