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나폴레옹 2011. 4. 19 딸에게 조막만한 봄을 선물했더니 그 봄에게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침이면 조각 빛 닿는 베란다로 출근시켰다가 해가 지면 제 책상 위로 퇴근시키는 나폴레옹 다가 올 뜨거운 여름과 격랑의 폭풍우를 생각하며 푸석한 형광등 아래 하루를 태우는 시간이지만 .. 詩舍廊/GEO 2011.04.19
해당화 해당화 2010. 11. 18 낯선 얼굴을 한가한 담너머로 바라본다 오십을 살면서 처음 만난 꽃 한 송이 시들어 슬픈 노란 장미 어깨 너머로 시골 다방 들뜬 화장기의 무료한 레지처럼 푸석한 낯빛으로 가을을 바라 본다 - 이름이 뭐지 - 해당화 - 아, 네가 해당화구나 너무나 익숙한 이름 그러나 너.. 詩舍廊/GEO 2010.11.18
땅끝 나무 땅끝 나무 2010. 8. 24 해남 울둘목 땅끝이 물살에 쓸려 나가는 언덕 위에서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밤새 으르렁대다 푸르게 손 씻고 떠난 태풍 가지마다 사래 치는 그림자로 남았다 옆에 선 멀쑥한 녀석은 분명 해송인데 광목댕기 꽃 치레 키큰 나무는 이름이 없다 호령과 비명을 걸고 철커.. 詩舍廊/GEO 2010.08.23
담쟁이 꽃 담쟁이 꽃 2010. 6. 28 무성하게 내미는 손바닥들 늙은 벽은 푸른 함성으로 가득한데 담장 밑엔 하얀 눈물이 쌓였다. 박수와 환호 여름은 눈부시게 부숴지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 찡그린 표정 하나 눈치 빠른 벌 한 마리 바람으로 여몄어도 맺힌 눈물같은 꽃 숨은 가슴을 헤치고 간다. 詩舍廊/GEO 2010.06.28
아기 무당벌레 아기 무당벌레 2010. 5. 11 출근 길 자동차 앞 유리창 눈꼽만한 벌레 한 마리 이제 오월이니 눈 뜬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파릇한 생명 파란 기척 몇 번이나 날개짓을 했을까 잠깐 내려 쉰 곳에서 느닷 없는 여행을 떠난다 여린 여섯발 미끄러지지 않으려 동그랗게 웅크린 동그란 표정 푸석한 .. 詩舍廊/GEO 2010.05.11
개나리 개나리 2010. 3. 16 삼월 치맛자락은 아직도 매콤 쌀쌀한데 겨우내 푸르렀던 동백이 새초롬 합니다 마른 담벼락 사이로 꽃샘 햇살이 비집어 들어 노랗게 몇 송이 봄이 눈 뜬 탓인가 봅니다 詩舍廊/GEO 2010.03.16
無花果 無花果 2010. 3. 2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꽃이 피고 떠나 가면 그림자 뒤로 꽃이 진다 아픈 배 살점처럼 띁어 낸 자식 세월 흘러 시든 꽃 발 아래 떨어져도 속으로 피흘리는 어미 꽃은 지지 않으리 꽃 피면 햇발로 하늘을 날고 꽃 지면 먹장으로 가슴을 메운다 詩舍廊/GEO 2010.02.14
낙엽의 이유 낙엽의 이유 2009. 11. 3 가을이 낙엽을 쏟는 것은 너의 손을 내밀어 달라는 것이다 낙엽이 쉬 떠나지 않고 사위를 배회하는 것은 풀죽은 너를 향한 재촉이다 바람불어 제 몸 휘몰아 날리는 것은 부러 고개 숙이는 너를 끄집는 것이다 기어이 둔덕 귀퉁이 우루루 스러지는 것은 대답없는 너.. 詩舍廊/GEO 2009.11.03
새털 구름 새털 구름 2009. 10. 27 여름내내 까치발로 하늘을 좇았다 태풍도 닿지 않은 무던했던 시간들 먼 대관령엔 예민한 얼음이 얼었다던데 팔을 뻗쳐도 하늘은 더 높게 푸르고 어차피 닿지 못할 마음 내려 놓으니 고개 숙인 가을 위로 새털 구름 한결 가볍게 난다 詩舍廊/GEO 2009.10.27
고양이 고양이 2009. 9. 24 참회의 바다에서 도망치던 새벽길 검은 파도가 사위를 덮어 전조등, 날 선 꼬챙이처럼 찌르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남겨진 해변에는 헛기침같은 폭죽이 오르고 금단에서 해방된 담배연기 한줌 가슴째 어둠으로 사라진다 절실함이 없는 의무라는 것 일말의 가책과 고개 돌.. 詩舍廊/GEO 2009.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