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9월이 열렸다. 생일이, 추석이 있는 달이다.
45년전 추석 이틀 뒤에 태어나 음력 내 생일은 대충 9월말과 시월초를 넘나든다.
음력으로 생일을 나면 추석 명절 남은 음식만 얻어 먹을까봐 생일날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으라고
부모님은 내 생일을 양력으로 맞게 해주셨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놈 생일은 나보다 이주일 빠르다.
녀석 생일로 9월이 시작되고 내 생일로 9월이 반토막 난다.
아버님 생신도 대충 이즈음인데 돌아가시고 나니 기일만 기억할 뿐 생신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9월이면 세번 생일 상에 추석까지.. 제법 풍족한 달이었던 것 같다.
하긴 때문에 어머니는 꽤 힘드셨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그 9월에 행사가 하나 추가 됐다.
9월 초순에 동생과 함께 고령으로 벌초를 가는 일이다.
종교 문제로 선산에 묻히시지 못한 아버지 산소는 대구 근교 고령 초입의 교회 묘지에 있다.
달랑 산소 하나에 어머니를 위한 가묘 자리 하나..
벌초라기엔 너무 작은 규모지만 일년에 한 번 낫질을 해보는 우리 형제에겐 큰 일이다.
남들은 쓱싹쓱싹 한 30분 남짓이면 끝낼 일을 우리 형제는 두세시간 끙끙대야 어설프게나마
벌초를 마칠 수 있다.
9월의 산등성이는 아직도 무척 덥다. 그게 아버님 산소가 아니라면 아마 무척 고역으로 여겨질테지만
1년에 한번이라도 아버지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라서 나름 의미가 있다.
주말에 홈쇼핑을 보다 조그마한 예초기를 하나 주문했다. 1년에 한번 쓸...
그리고 멀지 않은 시간에는 그나마도 쓸 일이 없을(어머니 마저 떠나시면 산소를 정리하고 두분 모두
화장해서 수목장을 하기로 가족간에 합의가 되어 있다.) 예초기를 사면서 괜히 아버님에게 미안했다.
마치 아버님 등 밀어 드리는 일을 떼밀이에게 맡기는 느낌이랄까?
이번 주말 동생과 함께 벌초를 갈 예정이다.
예초기 땜에 몸은 한결 편하겠지만 지금부터 드는 이 송구함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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