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2년만에 성묘를 다녀왔다. 지난해 수술 끝에 동생만 보낼 때 맘이 짠했는데..
그걸 보면 나도 천상 장남인 셈이다. 아직 발목이 부실하지만 또 빼먹으면 오래 후회가 될것 같아 무리를
감수하고 나선 길이다.
모처럼 청명한 날씨에 추석 2주전 주말이었으니.....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만원이다.
집을 나서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기까지만 두시간이 걸렸으니.. 명절 귀성이 다름 아니다.
결국 7시간이나 걸려서 대구 근교 성산면에 있는 교회 묘지에 도착했다.
급경사의 산을 100미터쯤 올라야 아버지의 산소가 있다.
서투른 낫질이 두려워 홈쇼핑에서 홀딱 산 충전형 예초기를 무슨 비장의 무기인양 어깨에 매고
산소가 있는 산을 올랐다. 평지를 걸을 때 견딜만 하던 발목이 산을 오르자 부러질것 같이 아프다.
아직 산행은 무린가 싶다. 근력 강화를 위해 등산을 해볼까 요량하고 있었는데 언감생심이다.
발목도 발목이지만 가쁜 숨을 감당해내기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한살씩 더할 때마다 아버지 산소를 오르는 길이 더욱 힘들어짐을 느낀다.
이 산소를 오르지 못하게 되면 나도 곧 아버지에게로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가는 동생놈의 안쓰러워하는 눈빛도 참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이었다. 겨우 5년 차인데...
23년전 이 가파른 산을 무거운 관을 짊어지고 올랐던 친구들 동생들 수고가 새삼스럽다.
가쁜 숨 내쉬며 오른 산소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언제나처럼 시원하다.
높진 않지만 앞으로 연이어 펼쳐진 자그마한 야산들이 늦은 신록으로 가득하고
바람 또한 과부하로 헉헉대는 내 폐를 진정시켜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청량하다.
산소는 피폐했다. 온갖 잡풀이 산소 위로 주변으로 봉분 높이만큼 자라 뒤덮혀 있고
여기저기 어린 참나무들도 제 마음대로 자라고 있다.
산소 옆 기울어지고 초라한 화강암 비석 옆으로 내이름과 동생 이름이 허옇게 음각되어 있다.
그때가 대학 3학년, 동생이 고1이었으니 산소의 품위나 모양을 생각할 형편이 아니었다 해도
지금보면 참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소다. 몇 년전 근처의 선영은 일가들이 모여 전체적으로 비석과
상석을 다 새로 했다고 하는데 예수 신이 너무 세다고 선산에 모셔지지 못한 아버지의 산소는 혼자
이렇게 초라하게 퇴락하고 있으니 아들의 무능함이 부끄러운 일이다.
하여튼 동생은 낫으로 �자란 나무며 풀들을 쳐내는 동안 나는 비장의 예초기 전원을 켜고
봉분부터 갈무리를 시작했다.
근데.. 이놈의 예초기 상태가 영 아니다. 실내 진공청소기보다 비리비리한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조금 억센 잔디를 만나면 와이어가 서버린다. 완전히 애기 손목 힘 밖에 안된다.... 낭패!
결국 다시 낫을 집어 들고 베는게 아니라 뜯는 벌초를 한시간 남짓 낑낑대고 했다.
예초기는 마지막 마무리 다듬는 정도의 용도로 쓰이긴 �다.ㅜㅜ
그래도 일년에 한번 하는 낫질이지만 요령이 조금씩은 쌓여 간다는 생각이 이르자 픽 웃음이 났다.
아무리 낑낑대고 해도 끝나고 돌아보면 처삼촌 벌초 모습 밖에 안된다. 하지만 여력이 없다.
아래 산소에서 한 가족이 강력한 예초기로 시원하게 벌초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근데 그집 아저씨 얼굴이 낯에 익다. 일환이? 이름이 언뜻 떠올랐다. 슬쩍 비석을 보니 맞다. 후배다.
20여년전 같은 교회를 다녔던 후배 1,2년 정도 동생인거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아는 척을 했다. 저쪽에서도 어디선가 많이 봤다는 정도의 묘한 표정이다. 어색한 인사...
지난 세월을 더듬어 기억을 짜맞춰보기에는 세월이 너무 흘렀고 그리고 그와 나는 그리 친하진 않았다.
어색한 인사와 연이은 어색한 작별을 뒤로 하고 짧은 기도를 드리고 산을 내려 왔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그가 지금 어디 계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를 위해 진심어린 사랑과 희생을 쏟은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그에게 참된 안식을 허락해주시고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 평안을 허락하소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주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처가를 잠깐 들렀다가 밤을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삼성라이온즈와 엘지트윈스의 시즌 17차전 중계가 라디오에서 긴박하게 흐르다 경북 도계를 지나자
끊겼다. 11시반에 들어선 집에서 확인해보니 12회 연장끝 무승부란다.
프로야구 승부보다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나쁜 아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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