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남편의 명절 증후군

취몽인 2007. 9. 27. 13:51

 추석 연휴가 끝났다.

여름 휴가 못잖은 닷새의 연휴였으니 으례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운게 당연할 듯 하다.

하지만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목요일이여서 이틀만 근무하면 또 쉴 수 있다는 기대 탓만은 아니다.

 

 언제나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며느리 증후군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금년에는 어느 조사회사 자료를 토대로 시어머니 증후군도 만만찮다는 보도도 나오긴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묻혀있는 아픔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명절 증후군,

그 사이에 있는 남편 (또는 아들) 증후군에 대해서도 이제는 인정을 해야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명절이 다가오면 인상 찌푸린 아내의 얼굴 뒤로 전전긍긍하는 남편의 얼굴이 숨어 있다는는 사실,

보통의 남편이라면 수긍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TV 오락 프로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아내는 정신없이

일을 하고 남편은 시댁 식구들과 고스톱이나 치고 있는 그런 명절.. 그건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언감생심으로 여기는 일이다.

 

 남편은 이제 수년의 경험으로 인해 차곡차곡 학습된 대로 명절 일주일 전부터 아내의 눈치를 봐가며

하나하나 숙제를 해나가야 한다. 우선 예민한 아내의 비위를 사전에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처가부터

챙겨야 한다. 본가 선물에 앞서 처가 선물을 먼저 챙겨 적어도 내가 당신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사인을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보내야 한다. 그 다음은 장보기, 내 스케줄보다 아내의 스케줄을 먼저 챙겨 시간을 맞추어야 한다. 제수거리와 먹거리를 사고 가득찬 카트를 앞장 서서 끌며 사이사이에 아내를 위한 와인이라도 한 병 챙기는 가시적인 성의를 보여야 한다. 물론 계산대에서 자신의 카드를 잽싸게 내미는 것도 필수. 집으로 돌아 오면 전 한가지 쯤은 책임져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서툰 솜씨로 약간의 구박을 받아도

그 구박 뒤의 위안을 아내가 원하고 있음을 읽어야 한다. 설겆이는 반드시 맡아야 할 책무이고 수고했다는 립서비스 또한 짬짬이 쏟아 내야만 명절 전야가 평화롭다.

 

 명절 당일, 본격적인 남편의 스트레스는 시작된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어머니와 그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꼴 사납게 생각하는 아내의 사이에서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취하면서 조금은

어머니에게 퉁박을 아내에겐 겸연쩍은 미소를 날리는 줄타기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이것이 시대의 대세임을 도끼 눈을 부라리는 어머니에게 강변하며 상차리기와 설겆이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으로 어머니의 권력보다 아내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길 아내는 바란다. 고스톰을 친다면 아내를 반드시 끼워야 하고 꼭 내 오른 편에 앉혀야 한다. 전체의 판을 보는 시각과 함께 아내의 패를 예측하고 밀어주는 능력 또한 필수적이다. 돈 몇푼 잃어줘서 아내를 승리감에 빠지게 한다면 그 날 오후 집안은 평화로울 것이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릴 작정이라면 미리 아내에게 장모님 용돈과 함께 같이 챙겨줘야 한다.

고통은 내가 생색은 아내가... 이것이 남편의 필수적 덕목이다.

 

 동생을, 형을 지나치게 챙기는 것도 삼가해야 한다. 그런 모습들은 아내 속에 잠재된 형제에 대한 애틋함을 불꽃처럼 피어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곳 비교로 이어지고 즉각 나의 소흘함에 대한 원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적당한 면박과 보이지 않게 챙기기.. 명절 동기간 우애 표현의 법칙이다.

 

 처가에서는 적당히 까불어야 한다. 다소 과장되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며 귀에 거슬리는 본가 식구 험담이 들려도 못들은 척 아니면 굳게 마음 먹고 맞장구를 쳐준다면 집안이 화목할 것이다.

절대 금해야 할 것은 심심한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 처가에 머무는 그 자체가 큰 행복임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색은 일원어치도 해서는 안될 금기로 삼아야 한다. 

 

 가족이 떠난 명절 뒷 시간, 본격적인 위로와 아부의 시간이다. 어깨를 주물러 주고 라면이라도 직접 끓여 대령하고 청소기도 알아서 돌리고.. 지쳤음을 만천하에 표현하고 싶은 아내에게 철저하게 공감함을

보여야 한다. 아내 마음에 여유가 좀 보이면 찜질방이라도 모시고 갈 일이다. 밤이면 미리 사놓은 와인을 따르며 진정한 감사와 위로의 태도로 마무리를 해도 좋으리라.

 

 피곤한 아내가 잠들고 나면 그때서야 냉장고 문을 열고 식은 명절 반찬 꺼내 소주라도 한 잔 할 일이다.

 

 그러니 어찌 출근이 반갑지 않겠는가? 

세상 모든 스트레스가 몰려들지라도 사랑만으로는 감당해 내지 못할 명절기간의 수많은 가식을 이기는 것보다는 쉬우리라. 

 

 아내여! 당신만큼 나도 명절이 싫다는 것을 알아주오! 

'이야기舍廊 > 하루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미지  (0) 2007.10.17
용기  (0) 2007.10.13
익명의 폭력 1.  (0) 2007.09.12
성묘  (0) 2007.09.11
9월  (0) 2007.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