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24
가게 주인이 집에서 쓰던 햄슬라이서 기계를 가져가라 해서 갔다.
30kg 쯤 되니 혼자는 못들고 가게의 실습생과 함께 가란다.
청파동 뒷골목 반지하 집을 찾아가니 떡하니 놓인 슬라이서 기계,
둘이서 들어 보았더니 꿈쩍도 않는다. 족히 70~80kg은 돼 보인다. 난감.
지나가던 학생까지 불러 어찌어찌 차에 싣고 집으로 와서
저녁 먹으러 준비하던 교회 친구들을 급히 불러내 집에 부려 놓았다.
친구들은 부실한 내 체력을 아는지라 손도 못대게 하고 자기들끼리 끙끙대며 옮겼다.
거실 한 켠에 무슨 로보트처럼 생긴 허연 알루미늄 덩어리를 앉혀놓고
고마운 마음을 삽겹살에 곡차(?)를 대접하며 전했다.
혼자서는 무거운 물건 하나 제대로 옮길 수 없는 이 하찮은 체력,
벽에 못 하나 박는 일도 땀을 쏟으며 진을 빼야하는 이 어설픈 샌님의 생활력,
새삼 지금까지 펜대나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살아온 세월이 감사하다.
가게 하나 시작하면서 집안이 뒤죽박죽이 되어 간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집에 세탁기 만한 슬라이스 기계가 떡하니 손님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500리터 짜리 냉장고도 하나 더 들여놔야 한다니....
밤새 꿈 속에서 그놈의 냉장고 놓을 자리 잡느라 골몰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무게를 새로운 삶을 접하면서 새삼 느낀다.
정량의 그릇에 담긴 물처럼 찰랑찰랑 살다 새로운 양이 추가되어 넘쳐나는 용량.
그 넘침이 던져 줄 혼란이 두렵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역시 나는 하찮은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