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시편

아! 빌라도여.

취몽인 2008. 3. 28. 16:42

 

 

아! 빌라도여,

 

2008. 3. 28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에 관한 보고가 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리마대 요셉이란 자가 장사를 허가해 달라는 요청까지 하지 않았던가?

무덤 문이 열리고 시체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니다.

곧잘 민중이란 것들은 죽은 영웅을 우상화하기도 하니까

악성 루머 따위로 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게 스며드는 이 두려움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소요를 일으킨 속주의 패거리 하나 처형한 것 뿐 아닌가?

하지만 정말 그가 다시 살아났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황제의 위탁자인 내가 힘으로 굴복시킨 생명이 되살아 났다면,

내가 내린 결정이 그에게 무효하다면,

그는 나의 결정, 황제의 결정 위에 존재하는 권위가 아닌가?

들어보면 그는 되살아 날 것을 장담했다고 한다. 

내 결정의 순간에 그는 속으로 웃고 있었단 말인가?

아내의 예감, 그것은 나의 예감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활한 유대의 리더들은 단 한가지 나의 약점,

종잡을 수 없는 황제에 대한 불안함을 건드렸고

나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도전이었다. 불가피했단 말이다.

그들에게 그와 십자가를 내던져 주고 나는 손을 씻었다. 

그의 무죄함과 나의 무죄함을 세상에 증거로 남기고 싶었다.

순간 피투성이 얼굴 속에 담긴 그의 웃음이 보였다.

비웃는다는 느낌은 들지않았으나 안타까움이 묻은 그의 웃음.

그 순간 십자가는 이미 내 것이 되고 말았는지 모른다.

그의 다시 살아남은 이제 나의 죽음이 될 지 모른다.

아니 이제 곧 십자가는 해골 언덕에서 내려와 나의 관저에 설 것이다.

나는 붉은 비단 옷을 두른채 대리석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내가 죽은 뒤 나는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며

그는 안타까운 웃음을 그 언덕 위에서 지으며 나를 내려다 볼 것이다.

안된다. 그가 다시 살아 나서는 안된다.

그의 삶은 나의 죽음이다. 아! 아! 나의 죽음은 나의 책임이 아닌데,

나는 무죄를 주장하며 손을 씻었는데

왜 씻은 손에서 피가 흐르는가?

왜 그의 가시관이 나의 가슴에서 솟아 오르는가? 

유대인의 왕이여! 나의 황제여!

나를 죄 없다 변호해 주시오.

나의 죄 없음을 그대들은 아시지 않소?

왜 이 팔레스타인의 하늘에 내 무죄한 피를 쏟게 하려 하시오?

등 뒤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 근위대장!! 저들을 막아라.

나는 십자가를 질 수 없노라.

나는 무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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