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 (월)
유월이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 왔다. 변덕스럽다는 것. 그것은 절망과 함께 희망도 뒤섞여 있다는 것.
변덕스러움 속에서라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내가 안쓰럽다.
유월은 내게 그렇다. 그런 마음으로 詩 한편 써봤다. 지극히 개인적 상념이 가득한 詩 같지 않은 詩.
안방과 연한 담벼락에 담쟁이가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난 겨울부터 옆집 담벼락에 달라 붙은
남색으로 여문 담쟁이 씨앗들(나는 담쟁이 씨앗을 그 때 처음 보았다. 늘 그렇게 있었을텐데..)을 줏어
벽과 바닥 블록이 만나는 모서리 흙더미 속에다 생각 나는대로 심어 두었다.
봄이 오고 블록 틈 사이로 민들레며 이름모를 풀들이 예년처럼 싹을 틔우는 것을 보면서 내심 그중에서
담쟁이 싹이 돋아나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 어느날 주변의 풀들과는 다른 모양의,
잎들이 거북손처럼 갈라진 그리고 줄기에서 붉은색이 언뜻 도는 담쟁이 새싹을 발견했다. 드디어..
더디 자라는 녀석을 보면서 내년이나 늦어도 내 후년쯤이면 침실 창틀 위로 기어 올라 안방을 기웃거릴
담쟁이 넝쿨들을 성급하게 상상하기도 했다.
어제 오후, 교회를 갔다가 창문 앞 좁은 마당으로 나갔을 때 유난히 말끔한 마당을 보고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당에 오밀조밀 하던 잡풀들이 말끔히 치워져있는게 아닌가.
아뿔사 계단 청소하는 아줌마가 오는 날이었다. 얼른 벽 틈의 담쟁이 새싹을 찾아보았다.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줌마가 말끔히 뽑아 버린 것이다. 허탈..
적어도 오륙십개 이상의 씨앗을 뿌려 뒀으니 싹은 또 날 것이다. 조그마한 메모라도 하나 새 싹이 나면
벽에 붙여둬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청소하는 아줌마 얼굴이 떠올랐다.
늘 빌라 주변이 지저분하다고 사람들의 지청구를 듣던 그 아줌마.. 돈을 올려 주고 일주일에 두 번씩으로
청소 횟수를 늘리고 나니 주변이 좀 깨끗해졌다고 뿌듯해 하던 아내의 얼굴..
그 아주머니에게 내가 심은 담쟁이 씨앗과 새싹은 어떤 의미일까? 뽑아도 뽑아도 돌아서면 또 돋아나는
지겨운 잡초들, 그 중에 하나일뿐이겠지. 아니 그냥 둬도 제멋대로 자라나 속상한 형편에 청소하라
닥달하던 이들이 작정하고 심은 풀 나부랭이라니.. 뭐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의 여유가 그녀의 고초가 되는 현실. 그 사이에서 지금도 나는 고민한다.
메모 쪽지를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 담쟁이를 구할 것인가, 아주머니를 도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