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돌아 앉은 큐슈(1)

취몽인 2009. 3. 9. 15:37

 

 지난 주말 모 신문사 초청 행사로 2박 3일 일정의 북큐슈 지역 여행을 다녀 왔다.

어제 저녁에 돌아 왔으니 겨우 만 하루가 안되는데 먼 날 일처럼 느껴지는 건 무엇때문일까.

 

 제목을 정하기 위해 북큐슈에서 받은 인상을 한 마디로 규정해보려 했는데 쉽지 않다. 

환율 급상승 탓에 관광객, 그중에서도 특히 다수를 이루던 한국인 관광객이 급감해서 어딜 가나 한산했던

그리고 아직도 꿈틀대는 활화산의 기운으로 황량해 보이던 아소의 고원지대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서인지

괜히 일본 열도들에게 혼자 이지메 당하고 있는 땅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돌아 앉은 큐슈'라 제목을 정하고 글을 시작해 본다.

 

  <3월 6일>

 

  전날 늦게까지 모임이 있은 터라 새벽 6시 인천 공항에

당도하라는 미션의 수행은 참 어려웠다.

새벽 4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피곤에 젖은 몸을 끌고 공항리무진을 탔다.

다행히 집 근처 사당역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어 4시 40분 경

탑승,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5시 30분...

일행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출국 수속 카운터는 물론 커피숍도 문을 아직 열지 않은 시간.

딸내미들 수학여행갈 때 사준 쪼끄마한 캐리어 백에 이틀 입을 옷을 때려 넣고 어깨에 숄더 백 하나 매고서성이길 30분..

 

약속한 카운터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막 문을 연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사서 기웃기웃 초면의 일행들에게 인사를 건낸다. 일행은 모두 20명 정도.

낯 익은 얼굴은 둘 정도 나머지는 모두 초면인데 얼른 봐도 30대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후배들..

노인 대접이 불보듯 뻔해 보였다. 직감적으로 민폐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8시에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엉망인 속에 들이닥친 텁텁한 기내식이 채 뱃속에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큐슈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도 안된 9시 25분. 딱 김해 공항 만 한 한적한 후쿠오카 공항.

제주도보다 조금 먼 거리에 일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서자

큐슈 최대의 도시이자 관문인 후쿠오카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우리 일행을 맞는다.

 

 대절버스를 타고 다이자후 텐만구(太帝府 天滿宮)로 이동.

일본의 수많은 神들 중에 학문의 神으로 추앙 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를 모신 신사라고 한다.

일본의 신사가 모두 그렇듯 과장된곡선의 지붕을 인 본전,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탑과 기물들, 오래된 나무와 깔끔하게 자리한

정원의 풍경 속에 요란하게 매달린 각종 기원의 흔적들이 뒤섞여 있다.

새학기인 탓에 유난히 학생들의 "向上, 成就" 따위의 기원 쪽지가 많은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우리나라 못잖은 입시지옥 속에 사는 일본이라니 이 녀석들도 참

안됐다.

 

출발할 때 환전 환율이 100엔에 1,600원... 50만원을 건네니 3만엔 정도를 주더군요.. 엄청나다.

휴게소 커피 한잔이 400엔... 우리 돈으로는 6,400원...  고환율이

실감나더군요.

이 와중에 일본 여행이라니.. 원님 덕분에 누리는 엄청난 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최측에 거듭 감사.^^

 

본전 앞의 오래된 매화나무 도비우매(飛梅)에는 세월 만큼의 이끼들이

 깊게 베여 있어 잘 어울려 보였다.

 

 

본전  뒤에 있는 식당에서 일본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간간히

뿌리는 봄비 사이로 몇 송이 남지 않은 늦은 매화와 비에 젖에 평상에 곱게 내려 앉은 떠나는 꽃잎들의

미소를 즐기고 다이자후를 떠났다.

아, 소원 성취해 준다는이곳 특산품 '우메가에 모치'는 속이 뒤집혀 차마 못 먹었습니다.

 

  

 

 

 

 

 

 

 

 

 

 

 

 

 옛날 고등학교시절 까만 교복을 그대로 입은 까까머리 일본 학생들 틈을 비집고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발목이 정말 발목을 잡는다. 근래 들어 제일 많이 걸은 탓이지만 겨우 첫 코스를 돌아오는 길인데.. 큰 일이다.

 

 

그래도 버스는 두번째 목적지인 벳부(別府)를 향해 출발. 얌전하게 생긴 가이드가 Y담을 하느라 애쓴다.^^

 

후쿠오카를 출발한지 두시간 남짓, 피곤한 김에 잠깐 졸고

났더니 가이드가 깨운다. 

벳부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기념 사진 몇장

찍고.. 바다만 보면 기분이 좋다.

일본의 바다라도 바다는 바다일뿐.... 그리고 태평양 아닌가?

 

 

 

 

벳부 숙소로 가기전 중간에 들른 '유노하나 유황재배지'.

생명을 허락치 않는 불모의 화산 지대에서 그 생명의 파괴자인 유황을 재배하는

일본인들.. 재미 있는 사람들.

 

 

오이타현에 속한 벳부의 유명한 관광지라는 '지고쿠센메구리'(地獄溫泉).

유명한 관광지라 소문이 났을수록 실제는 별로 볼게 없더라는 삶의 경험은 여지없이

 적중.

 

 

9개의 지옥 중 가마솥지옥을 구경했다. 놀이동산 같은

분위기에 탈 것 대신 뜨거운 온천이 있는 곳.

장수한다는 온천수도 먹어보고 한국 아줌마 부대 틈에

끼어서 족욕도 하고... 발목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기도 나무들 둥치는 길고 짧은 이끼로 가득 덮혀 있다.

연륜에 관계없이 습기 탓인 듯 보인다.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남아 벳부 시내 구경을 잠깐 했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 벳부에 하나뿐인 백화점(이름은 기억이

안남..) 그 지하에 있는 백엔샵도 가서 무늬가 좋아하는 후리카케

몇 봉지 사고..

그래도 한국에서 잘나가는 회사의 홍보팀장들인데 단체로 몰려

백엔샵 구경이라니.. 썩 어울리진 않았다.

 

다시 지옥온천 근처로 이동

 'coreana'라는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 파티.

일본까지 와서 왠 삼겹살인가 싶었지만 교포가족들과 허물없이

얘기를 나눌수 있어 음식 이상 의미가 깊었다.

소주까지 마시고 늦었지만 서로 통성명도 하고..

이제야 일행이 된듯 싶었다.

역시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ㅠㅠ

  

적당한 취기 속에 언덕 위에 자리잡은 조용한 호텔로 이동.  방을 배정 받고 유카타로 갈아 입자마자

호출이 온다. 일간스포츠팀 방에서 2차가 진행중이다..

  

12시가 넘어 방으로 돌아오니 룸메이트는 숙면중.. 여행을 아는 분이시다. 아사히 캔 하나 마시고 나도 취침.

창밖 어두움 저멀리 벳부만의 바다가 조용히 반짝이고 있다.

 

 

 

 

쉽게 잠은 들지 않고..

바다를 보다 까물까물 첫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야기舍廊 > 하루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 앉은 큐슈(3)  (0) 2009.03.10
돌아 앉은 큐슈(2)  (0) 2009.03.10
대관령 그리고 동해  (0) 2009.03.03
빚 독촉  (0) 2009.02.1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 2009.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