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돌아 앉은 큐슈(2)

취몽인 2009. 3. 10. 09:54

 

<3월 7일>

 

   1박을 한 벳부 칸카이소(觀海) 호텔. 바다를 바라 본다는 이름처럼 벳부 앞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있다.

 

6시에 일어나 어제 못한 온천욕을 잠깐 즐겼다.

노천탕도 있었지만 아침에는 여성 전용이란다.

일본 정식과 부페가 곁들여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호텔에서 마치고 친절한 인사를 보내는 보내는

호텔 여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벳부를 떠나 민예촌 거리가 있다는 유휴인으로 출발.  9시 30분 무렵.

 

 

  혼자 우뚝 솟은 산, 유후다케 아래에 위치한 유후인은

아기자기한 관광지다.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하지만 좁은 골목 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민예품 상점과 카페들이 참 예쁘다.

유리공예품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비싸서 눈 요기로만

만족...  

가이드가 용이 된 이무기가 살았던 호수로 간다고 해서

시원찮은 발목이 감당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

 

 

근데.. 마을 끝자락에 있는 긴린코 호수(?)는 거리도 지척일뿐 만 아니라 호수라고 하기엔 몹시 민망한

사이즈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그마한 방죽 정도? 호수라니...과장이 좀 지나치다 싶다.

이무기가 살았으면 겨우 발이나 담글 수 있었을까 걱정도 된다.

유명하다는 고로케도 건너 뛰고 이름도 모를 예쁜 가게 옆 햇볕

잘드는 담장 아래서 캔커피 한잔으로 유후인의 서정을 마음 속에 담아 둔다. 

 

산속 시골 마을도 참 예쁘게 만들어 내는 일본의 요런 축소지향적 문화는 꽤 괜찮다 생각해 본다. 

 

  봄날 해가 유후다케 어깨에 걸릴 무렵 버스는 유후인을 떠나

이번 여행 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가이드가 말하는 아소산을 향해 출발.

 

 가이드가 일본의 건국설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가야국 김수로왕의 아들들이 이곳 큐슈로 와서 나라를

처음 일구었다는... 그리고 몇몇 신의 이야기며..

일본의 뿌리 속에 깊이 자리한 백제의 이야기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할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가 원조이며 일본은 우리의 영향권에서 비롯

되었다는 논리를 펼치길 좋아하고 듣기도 좋아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혹시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 의식 또는 열등 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 최면 같은 건 아닐까? 여러가지 역사적 팩트로 인해 그것이 거의 기정 사실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굳이 일본의 뿌리에 한국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일본인들의 컴플렉스와 더불어 참 안타까운 문화 인류학적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런 논리를 좀더 확장하면 한국과 일본의 뿌리에 놓인

중국은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서로 다른 국가간에

어떤 동질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컨센서스 확장의 가능성이 된다면 오히려 세계 속에서 얼마다 큰 경쟁력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동반 상승하지 못하는 공격적 인식의

모습이 새삼 안타깝다.

 

아참! 나는 김해 김씨, 김수로왕의 사십몇대손.. 그러면 일본인은 나의 형제들인 셈인가?

 

 모두들 피곤한지 가이드의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하나 둘 쓰러져 자는 분위기다.

일본 천지에 깔린 스기목이라 불리는 삼나무 숲길을 구불구불 달리는 차창밖을 바라보다 깜빡 든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버스는 어느듯 황량하기 그지없는 고원지대에 들어서고 있다.  귀가 제법 멍멍하다.

 

멀리 남쪽으로 해발 1,500m가 넘는 아소산의 다섯

봉우리(눈에 보이는 건 넷)가 가이드의 설명대로

사람이누워있는 모습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멀지 않아 보였지만 마른 억새가 지천인 고만고만한 둔덕으로 이어진 고원길은 40분 가량 계속되었다

 

 데쟈뷰, 언젠가 호주 내륙 지방을 지나며 보았던 

다크 브라운의 뒤 덮혔던 황량함을 이곳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이 움츠린 곳, 그러나

그 나름의 생명이 숨쉬는 곳..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는 아소산. 제일 높은

다카다케 곁을 지나 세계 최고의 칼데라가 지금도 유황증기를분출하고 있는 나카다케를 향해 가는

길은 고원을 기어 오르는 길가로 제주 성산일출봉에서 본 듯한 목책이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나는 길

오른 쪽으로 밥공기를 엎어 놓은 듯한 봉우리가 보인다. 요란스레 광고 되었지만 실제 보니 그저 웃기는

모습의 고메츠카. 제주도의 이름 없는 작은 오름이 훨 예쁘다.

 

 

 

주차장에 차를 대니 앞으로 펼쳐진 작은 호수와

평원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 온다. 초원 천리,

쿠사센리란다.

 

 

 

 

 

 

 

토기로 된 냄비에 야채와 고기, 면을 끓여 먹는 무슨 야끼라는 점심을 먹고 나카다케를 배경으로 사진 몇장.

내 디카로 사진을 찍다 보니 정작 내 얼굴이 담긴 사진은 없을 것 같아 같이온 K제약 팀장님에게 한 장 부탁.

(나중에 즉석 인화까지 해주셨다. 다시한 번 감사.^^) 

 

분화구 유독 가스가 관람대 쪽으로 날아들어

나카다케 정상 구경은 오늘 불가능하다고 한다.

발목 땜에 오래 걸을 수 없어 일행에 민폐가 될까

걱정했는데 내심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대신 화산

박물관을 들러 화산 분출 시뮬레이션과 광고 홍보를 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엔 지극히 어설픈 홍보

영화를 관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더불어 살고 그 화산

덕에 먹고 사는 아소 사람들,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언뜻 보니 축제 이름도

'불의 축제'이고... 불이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면 화산 대신 아소시나 인근 시골 마을에 머물며 그들과 융화된 불의 모습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나의 삶에서 공존하는 두려움, 불은 무엇일까?

 

 

 

 

 

 

 

 

 

 

 

 

 

 

 

 

 

떠나와도 등 뒤에서 한참이나 증기를 뿜으며 우리를 지켜보던 나카다케를 내려와 원숭이 극장을 구경.

원숭이의 재롱이나 기예보다는 조련사들이 더 웃기는.. 표정이나 역할 분담이나.. 말은 못 알아 들어도

퍽이나 재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사람은 웃기고 원숭이는 진지한.. 언 밸런스의 연출이 돋보인다고나 할까.  

일행중 얼마전 첫아이를 낳았다는 여자분이 원숭이 보다는 옆 관객 품에 안긴 어린 아이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모성애... 그 아이를 통해 자기 뱃속에서 낳은 아이를 그리워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맘이 짠하다.

 

 라면, 라면.. 노래하는 일행들 성화에 주최측에서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 한 자루(?)를 사고 둘째 날 숙소인 아소 팜 빌리지로 이동... 실은 아까 지나 왔는데

가이드가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아마 짠!! 멋있게 보여 주고 싶은 비장의

카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우리 나라에도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광고 전략 프리젠테이션을 해줬던 힐니스(자연 치유)센터와 가족 건강 리조트를 지향한다는 아소 팜 빌리지, 누군가의 표현처럼 만화 스머프들이 사는 집처럼 방갈로를 드넓은 고원에 쭉  펼쳐 두고 있었다. 숙소가 셔틀을 타야할 만큼 제법 멀었지만 

만화 속 풍경 처럼 예쁘다.

 

  체크인 후 숙소에 짐을 푼다. 둥근 돔형의 숙소 안은 네개의 싱글 침대가 놓여 있다. 4인 가족

기준.

 

특별하게 생긴 모양 외에는 여러 가지가 불편하다. 식당도, 자판기도, 온천도, 프런트도 모조리 멀다.

다리 아픈 내게는 여러가지로 별로인 셈이다.

허적허적 걸어 식사에 앞서 온천을 하러 나섰다.

 

 

 

'불의 온천'이라는 타이틀의 온천은 아소산의 열기를 그대로 담았다고 한다. 그닥 크지 않은 실내와 옥외 온천

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행한  덕산 스파 박팀장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스파들에 비해  대단하진

않아 보인다. 하긴 비교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여긴 바로 화산지대 그 자체이니까.. 오리지널이란 점은 인정.

삼삼오오 무리지어 온천을 마치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뷔페 식당에서 저녁식사. 메뉴가 다양해서 좋았다.

 

 식사후 룸에서 쉬고 있는데 다시 전화. 한잔 하면서 일본과의 WBC 야구 중계를 같이 보시잔다.

맥주 몇 잔.. 야구는 형편이 아주 나쁘다. 일본에

와서 일본팀에게 콜드게임 패를 당하는 우리 대표팀 경기를 보는 심정이란....중간에 TV를 끄고 제대로

한 잔하는 분위기여서 슬그머니 룸으로 돌아왔다. 

 

 묵은 피로에 온천욕과 포식의 후유증까지 겹쳐

밤 10시경 침대에 들었다.

해외에 나와 10시에 잠을 청하기도 첨인 것 같다.

하지만 잠은 여전히 잘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새벽녘에나 잠들었다 보다.

 

 불의 땅에서 서성대다 그렇게 둘째 날이 타듯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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