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H. 브라운 <예수전>

취몽인 2009. 9. 25. 16:57

 

 

 

 

후대 교회의 목적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신약 공관복음과

당시 시대 사회적 관점에서 찾고 그 가운데서 예수의,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를

규명하고자 한 독일의 신학자 브라운이 1969년에 발간된 책을 1972년에 번역한 책이다.

 

골비처를 대표로 한 정통 보수주의 신학자들로 부터 좌파신학이라 맹렬히 공격을

받았고 오랫 동안 공개적 논쟁을 유발한 책이라고도 한다 

 

책의 원제는 Jesus. Der Mann aus Nzareth und seine Zeit, 1969로 번역서의 제목은

<예수와 그의 시대>로 되어 있다.

 

다소 복잡한 논리구조와 그때그때 성경을 펼쳐 확인하기에는 너무 많은 성경의 인용

내지 확인 때문에 읽어 내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책의 주된 논점은 지금(1960년대) 기성 기독교가 성경을 근거로 해서 받아들이고 전하는

예수의 모습은 본래의 모습에서 왜곡되어 있는 점이 많으며 그 이유는 초대 교회 이래

각 교회 공동체의 이해관계나 주관 등에 의해 성경의 원전 전승이 첨삭되고 재구성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그러면 변질되지 않은

목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목마름을 낳는 이야기들이었다.

 

가장 핵심이라 여겨지는 저자의 주장을 옮김으로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 가장 많이 애용되는

두가지 검사 문항을 끄집어 내어 -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든지 또는 그가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는 지에 대해서 묻고 따지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이러한 칭호가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내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대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신약성서는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의무를 지워 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신약성서 자체의 바탕에서도 - 우리가 위에서 간략하게 윤곽을 개관했던 것 같이 -

처음에는 아무 칭호도 붙이지 않고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거나 보충하는 일련의 칭호들이 사용되었고, 예수께서 가신 길에 관하여 점점 더

철저하게 구성된 체계를 가진 표상들을 사용했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 권위를 받아 들이려면, 그것과 함께 고대의 사고 방식과 표상 형식까지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필자는 그 당시 사림들이

예수의 권위를 위해서 이러한 표현 형식을 선택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예수의 행위와 말씀이 - 전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특정한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 필자에게 권위가 되었다는 데 있어서는 저 고대의 기독교인들과 의견이

일치된다. 

 

'이야기舍廊 > 책과 문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성 <信仰과 神學>  (0) 2009.09.28
최규창 <한국기독교시인론>  (0) 2009.09.28
보경 <사는 즐거움>  (0) 2009.09.16
호세 M 보니노 <사람됨을 위하여>  (0) 2009.09.04
황석영 <맛과 추억>  (0) 200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