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순
2010. 4. 9
벛꽃이 눈부신 4월
당신이 떠난 자리에서야
시든 장미
당신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내 아버지의 형수
내 사촌들의 어머니
내 어머니의 형님 동서
나의 큰 어머니
불타오르다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채
기억의 2층을 기어 다니신
당신의 만년
화려한 김치 맛이며
억센 편애며
도무지 끊어지지 않던 집착이며
눈 감지 못하던 안타까움까지
고스란히 둔 채
당신은 그예 떠났습니다
당신이 지키고 싶어 하던
조상 신들에게로 떠났습니다
어릴 적 제삿상
기를 쓰고 어린 조카에게 감추던
곳감이며 계란 반 토막이며
살 튼실한 조기는
이제 오롯히
당신을 위해 차려진
상에서 물려지면
누가 감출런지요
사랑이 한 편지면
그 사랑이 사람들 가슴을 에일 줄을
모로 타는 불꽃같던
당신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큰 아버지를 닮아
씨눈물 흘리던 외도의 딸 윤숙이
모진 고통을 저주하던
가시 돋힌 단단함으로
당신의 남편
내 아버지의 형
내 사촌들의 아버지
내 큰 아버지 곁으로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당신을 그닥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은 나의 한 줄기
그 가시 매운 끊어짐을 서러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