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켜 외 2편 김재덕
부음처럼 겨울이 왔다
문둥이 떨어진 손가락처럼
잎 떠난 자리
가슴 뭉툭한 빈 가지만
하늘에 툭 닿아 있다.
떠나기 위해서
그날 우리는
먼저, 너에게로 난 작은 문들을
하나씩 하나씩 닫아야 했다.
여름날 동안
우리가 주고받았던
끈적끈적한 대화를 멈추고
입을 닫듯 문을 닫아야 했다.
하늘 가득한 문닫는 소리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인사가 있었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떨켜 상처가 아물면
우리는
제문처럼 날리다
어디로 갔는지 소문으로 무성하고
부음처럼 다가온 겨울
뭉툭한 손 오므린 채
서운한 너는
하늘을 향해 빈 주먹질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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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시멘트 담벼락
지난 담쟁이들이
낡은 그물처럼
헤어져 붙어있다
겨우내 푸르던
측백나무
무표정한 얼굴은
여전히 푸석하고
주춤주춤
뿌리 얕은 목련,
꽃 눈치로
비켜 드는 햇빛을 훔친다
손톱 밑
생가시가 유난한
이즈음은
만사가 몸살이다
비는
속절없이 자꾸 내리고
마지막 남은 껍질과 다투는
애매한 봄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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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천년
세월을 버틴 옛집
모퉁이 닳은
주춧돌을 본다
기둥은 굽고
공포는 부스스해도
세 칸 절집
땅 딛은 발목으로 단단한데
마른 서까래
풍상 서린 골 선명한
처마 아래서
허여멀건 얼굴을 본다
고작 40 몇 년
주름 몇 가닥에 희끗한 귀밑머리
기름진 윗동의
하늘 아래 어설픈 입성이란...,
물소리도 겨우 흐르는
도리천
찰나를 지나느라
힘겨워 후들거리는 발목
사는 일이 무거워
한 움큼
종아리로 버티는 게 버겁다고
무심한 풍경에 하소연해도
곰보 주춧돌
뿌리 깊은 무표정에
아프단 말 차마 부끄러운
짧은 다리 가는 내 발목
절뚝거리며 내려가더라도
그래도 네 덕에
세상에 발붙이노라
슬픈 사례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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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소감
가슴조차 부신 봄날 오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음이 답답해 혼자 남쪽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제 엄마는 지레 걱정이 앞서 안절부절못하지만
다녀오라고 했다. 이십 년 끼고 산 이래 혼자 집을 떠나보내는 일은 처음이다.
처음 혼자 떠나 보낸 것은 딸 아이뿐만 아니다.
중학교 시절 처음 써본 이래 30여 년 만에 묵은 노트에서, 컴퓨터 폴더 한구석에서 설익은 채 뒹굴던
내 詩가 가라앉은 군함과 피어나는 꽃들로 어수선한 세상으로 훌쩍 혼자 떠났다.
최근의 나는 여러모로 초라하다. 거기에다 혼자 떠난 어줍잖은 글들로 인한 초라함이 더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내 詩는 아직 내 안에서조차 제대로 익지 못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선이란 말은 가당찮다.
조건부 허락, 이왕 써볼 요량이라면 제대로 해보라는 어른들의 깊은 꾸중으로 생각한다.
서툰 글을 참고 읽어주신 심사위원들께 송구한 감사를 드리고 늘 무심하기만 했던 사람을 굳이
이끌어 이 자리에 서도록 배려해주신 김태준박사님께 또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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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김재덕님의 응모작 중 <떨켜>외 2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인간을 세계 내 존재와 시간적 존재로 정의하면서 인간은 세계 속에 있으며(세계 내재성)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로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죽음의 가능성(한계 상황성)을 지닌 시간적 존재라고 규정하고 잇다.
그래서 우리는 기투성(企投性)을 가져야 한다는 귀결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인은 그 기투성의 시작을 <떨켜>로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부음처럼 겨울이 왔다
문둥이 떨어징 송가락처럼 / 잎 떠난 자리
가슴 뭉특한 빈 가지만 / 하늘에 툭 닿아 있다.
떠나기 위해서 / 그 날 우리는
먼저, 너에게로 난 작은 문들을 / 하나씩 하나씩 닫아야 했다.
여름날 동아 / 우리가 주고받았던
끈적끈적한 대화를 멈추고 / 입을 닫듯 문을 닫아야 했다.
. ...... 중략 .......
부음처럼 다가온 겨울 / 뭉특한 손 오므린 채
서운한 너는 / 하늘을 향해 빈 주먹질만 하는구나.
작품 <떨켜> 일부
실제로 두레박에 샘물이 다 담기지 않은 것도 있고 들어 올리는 동안 흘린 것도 잇고, 이물질이 끼어 잇는 것도 있다.
삶이란 어쩔 수 없는 미완성 일생을 살면서 몇 개의 작품이 조명을 받고 해타(咳唾)로 남아 회자 된다면 그 영광을 어디다
비교할 것인가. 조금 더 긴장감을 부여하고 압축하여 두레박마다 아주 시원한 단맛을 볼 수 있도록 절차탁마한 언어의 조탁으로
정진하여 대성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곽민, 유창섭, 장윤우, 전재동, 전형철, 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