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신사동에 나간 김에 강남 교보를 들러 책 몇권과 함께 성경을 새로 샀습니다.
교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이래 10년 이상을 함께 했던 성경이 모조리 틑어져 새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찬송가도 새롭게 바뀌었고 기존 성경은 메모할 여백이 너무 작아 어차피 새로 사야할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열번 가까이 읽은 데다 각종 메모며, 손때가 묻은 성경을 손에서 놓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한 달쯤 됐나요?
집사람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난 후 마음이 상한데다 요즘 사는 모습에 대한 자괴심까지 겹쳐 하나님이고 뭐고
될대로 되란 마음이 들어 내 손으로 발기발기 찢어버린 엄청난(?) 반역을을 해버린게 진실입니다.
내게 신앙이란 그런 정도엿던 것 같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신에게 화풀이를 해대는 정도의 이기적인 믿음 말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방치해 두느냐고, 이런 식으로 하면 당신과 영원히 인연을 끊을 수도 있다는 협박으로 성경을 찢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크리스찬에게 성경은, 뭐 다른 종교에 있어서도 경전은 마찬가지이겠지만, 신과 동일시되는 거룩한 책인데
그걸 찢어버린 무모함이 내 신앙의 현주소인 것이지요.
화가 좀 가라앉고 나서 내 앞에 널부러져 산산 조각이 난 성경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지요.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주섬주섬 찢어지지 않는 가죽 장정 속에 쓸어 담고서 지퍼를 채워 책장 한 구석에 두었습니다.
버릴 수도 없고 태울 수도 없는... 불순종의 증거같은 성경은 그렇게 상처처럼 내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새로운 의지를 담아 산 새로운 성경. 앞으로 십년은 또 이 성경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겠지만
내가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서가 오른쪽 귀퉁이에서 나를 보고 있는 찢어진 성경의 눈길을 느낍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린 예수님처럼, 작은 감정하나 추스리지 못하는 피조물에 의해 난도질 당한 신의 모습으로
성경은 오래오래 나를 바라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 성경이 나의 신앙을, 나의 삶을 지켜줄 가슴 뜨거운 횃불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