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서 불쑥 찾아온 늦가을을 만나러 안양유원지(현재의 정식 이름은 "안양 예술공원"이다)를 갔다왔다.
성미 급한 단풍나무는 혼자서 빨갛게 물들어 있고 가지가지 종류의 참나무들은 제각기 성정대로 서서히 잎을 떨구고 있었다.
서울대 수목원쪽에서 흘러들어오는 개울물은 발목을 적시기에도 부족할만큼 쫄쫄 흐르고 있었다.
항공기 탑승구름다리처럼 생긴 외국 작가의 설치 예술품들이 좀 낯설기는 했지만 관악산에서 불어오는 제법 힘찬 바람을 맞으며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 가을에 누리는 호사처럼 느껴졌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마시고 바짝 마른 하늘을 올려다 보다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낑낑대는 내 머리를 만났다.
그냥 가을이면 가을, 정취면 정취를 그대로 느끼고 마시면 될 일을 굳이 의미를 두고 묘사를 모색하는 좀생이 같은 녀석.
그런 정도의 유치한 정신이라면 이 가을은 참된 깊이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좌우로 저어 흔들고... 정신을 차려본다.
시는 기본적으로 스며나와야 하는 법. 쥐어 짠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왜 이 따위 강박이 내 머리 속에 들어있을까?
천박한 내 머리에 대한 징벌로 당분간은 객기를 부리며 살아야 할듯하다.
잠원동에, 양남동에 사는 친구들이 보고싶은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