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출근하는 아내의 기척에 눈을 뜬게 일곱시 반 무렵, 머리는
어디에 찧은듯 멍하고 입안은 시궁창에 밥이라도 말아 먹은 듯 이물감과 악취로 가득했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면 그때 부스스 일어나
세수하고 출근할 준비를 서둘렀지만 오늘은 문을 나서는 아내 뒷모습에다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만 의무처럼 던지고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다시 눈을 뜬 건 아홉시 반. 사무실에 늦는다는 문자를 휭하니 날리고 그제서야 침대에서 내려 왔다. 떫은 감을 한 입 가득
씹은 것 같은 이물감을 혓바닥까지 티슈로 닦아내고 냉장고를 열어 냉수를 한컵 들이키니 겨우 정신이 들었다.
인스탄트 누룽지탕은 형편없었다. 지난 주 홍대앞 성근 선배 사무실 근처 중국짐에서 먹었던 찬란한 누룽지탕에 비길 바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느낌이라도 있으리라 기대했던 나는 그야말로 어설픈 누룽지 몇 조각을 이도저도 아닌 끈적한 소스에 빠뜨려 놓은, 누룽지 숭늉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맛에 그렇잖아도 미슥거리는 속만 더 뒤집어 놓고야 말았다. 술냄새와 누룽지 냄새를 치열한 양치질로 씻어내는데 속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져 나오는 것 같은 구역이 일었다. 술은 전방위로 나를 초토화시켜 놓고 잠복해있다 이 아침에 모조리 일어서는
중이었다.
친구가 사무실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찾아 왔지만 다른 친구와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나의 식욕, 장기 상태도 문제이지만 그 친구의
식욕마저 빼앗아버릴 지 모르는 내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커피와 녹차를 번갈아 마시고 책상에 앉아 읽던 소설집을 다시 집어 들었다.
프랑켄스타인을 리 라이팅한 형식의 실험적 소설 한 편, 외계인적 시각을 구사하는 작품 한 편, 두 편의 단편을 읽었는데 뭔 내용인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눈만 활자 위를 달려 지나간 것이다. 열심을 다한 두 작가의 창작품은 나를 스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그 소설을
제대로 다시 읽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단 술은 속을 뒤집어 놓는다. 마실 때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밤새 위에서, 장에서 떠돌던 알콜들은 점막과 돌기를 마취시키고 소화액과
효소들의 밸런스를 모조리 깨뜨리는 것도 모자라 다음날 오후까지 이들 장기들을 여전히 주정부리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악취를 동반한다
그건 아마도 담배의 영향도 클 것으로 생각되지만 하옇든 면전에서 술을 마신 취객의 즉각적 술 냄새보다 다음날 아침 발효 숙성된 술 냄새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치명적이다. 입 다문 내 속으로 느껴지는 악취가 이 정도이면 밤새 옆자리에서 얼굴 맞대며 잠을 잔 아내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했을까 싶다. 부디 어젯 밤 아내가 일찍 숙면 속으로 들어갔었기를 뒤늦게 소망하게 된다. 그 다음은 머리이다 깨질 듯 아픈 것은 고사하고
생각이 힘들어진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책을 읽어도 뭔 내용인지 머릿 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그 정도가 아니라 책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일 때도
많다. 머리가 깨져서 뇌수가 흘러 상당 부분 비어버린다면 그럴 것인가? 더불어 모든 일에서 자유(?)로워 진다. 아무 짓도 못하고 그저 시간이 흘러
몸의 각 부분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뒤척뒤척 뭉게며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아! 내 일생에서 이렇게 술이 깨는데 소모한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 시간 만큼 나는 세상 속에서 가정에서 퇴보했을 것이다.
오후 다섯시 꺼억~ 긴 트림과 함께 몸은 돌아 온다. 보류되었던 식욕도 함께 돌아 온다. 좀 더 젊었을 때는 또 다른 술이 생각나기도 했었다.
생각하면 징그러운 일이다. 하지만 하루는 이미 저물었다. 술 먹는 데는 세 시간 남짓이 걸렸다면 깨는 데는 열일곱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런 술을 왜 먹었을까? 세상살이를 위해, 인간 관계를 위해.. 라고 늘 아내에게 말을 한다.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백하느니
그것들에 앞서 나는 이미 술에게 상당 부분 삶을 먹히고 있는 것 같다. 술이란 녀석이 취하게 위해 툭하면 나를 부르고 나는 무력하게 또는
사디스트처럼 끌려나가는 것이다. 증거가 있다. 이렇게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오후에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크나큰 아쉬움으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술에 먹힌 내가 주류코너에서 참이슬 프레쉬 150ml 한병을 카트 안쪽으로 집어 넣는 것을 술 깨던 내가 보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