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눈오는 날의 敵意

취몽인 2010. 12. 8. 17:45

 

 

 

 

 

  눈 다운 눈이 내리는 날이다.

 

  저녁까지 제법 많은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도 나와 있다.  오후 다섯시가 조금 넘었는데 창밖은 한 밤처럼 깜깜하다.

아마 하늘에서 눈들이 웅크리고 있는 탓이리라. 퇴근 길 남태령을 넘어가는 일이 만만치 않을 지도 모르지만 아침부터

지금까지 눈이 그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난 정말 눈을, 하얀 눈이 내리는 하늘을 좋아하는 것 같다.

 

  눈 내리는 하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요즈음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것은 단수일 수도 있고 복수일 수도 있다, 나를 은근히 싫어하고 있는 느낌을 떠올린 것이다.

그 이는 나의 오랜 친구이다. 함께 많은 술을 먹었고.. 여행을 같이 다녔으며.. 이런저런 고민도 같이 나눈 사이다.

때론 형제 같이, 때론 친구 같이, 때론 동업자 같이 지내온 그 이가 왜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일까?

세상 살이 한 오십년을 하다보니 느느니 눈치요, 또 살아남으려 의식, 무의식 중에 유독 예민하게 갈고 닦은 것이 눈치이다 보니

얼마 사이에 그 눈치의 그물에 걸린 不好의 느낌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다. 또는 싫어한다 라는 것은 첫 인상처럼 단박에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부대끼고 살면서 켜켜히 쌓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그간의 사귐의 연조를 봤을 때 이 경우는 분명 후자에 속할 것이다. 하긴 첨부터 싫었는데 꾹 참고 자비량을 베풀었을 지도 모르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의 나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好不好가 바뀌었다면 그 이유는, 그 단초는 내가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해가 끼어 있을 수도, 험담이 끼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던 그 이에게 비친 나의 존재는 비틀어져 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치 않은 일들을 말만 앞세워 떠든 虛言에 환멸을 느낀 탓일까? 그럴 수 있다. 30%의 가능성을 가지고 나는 얼마나 많은 꿈들을

이야기해 왔던가? 그건 30%의 진실 위에 또 다른 30%의 자기 기만을 더한, 그래서 70%의 불확실성을 비겁하게 가린 허풍이었을 것이다.

누가 나에게 그런 태도를 반복해서 보인다면, 실제로 그런 사람을 나또한 많이 보지 않았던가?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詩 나부랭이를 쓴답시고, 책줄이나 좀 읽는답시고 되먹지 못한 허세를 부린 탓은 아닐까? 그럴 수 있다. 지난 일년 동안

현실은 쥐뿔도 고려치 않고 詩라는, 지식이라는 미망 속에 빠져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조심을 한다고는

했지만 분명, 눈꼴 사나운 말이나 행동, 어줍잖은 잘난 척을 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런 나는 내게 보기에도 재수 없는 인간이다.

또 뭐가 있을까? 술과 밥을 마냥  얻어 먹기만 한 빈대 노릇은 하지 않았던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늘어 놓지는 않았던가?

아! 그런 일도 없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맨 정신에도 이 정도이면 취중에서는 더 심했을 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내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위에 든 정도만 가지고도 상종하지 못할 인간이란 소릴 들을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상투적이다. 갑자기 더 겸손해지고, 말을 더 줄이면 될 것인가? 사람 관계란게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 이를 보지 말고 피해야 하는걸까? 싫어하는 사람을 모른 척 좋아할 수 있는 것일까?

 

  창밖 어둠 속에 눈이 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미끌미끌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눈이라도 펑펑 내렸음 좋겠다.

 

  미당 선생의 목소리처럼 부끄러움과 죄에서 초연할 수 있음 좋겠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 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 미당 서정주 '자화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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