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미당의 시집을 처음 읽었다.
너무 유명한 양반이라, 그리고 너무나 많은 시를 쓰신 양반이라, 굳이 시집을 읽지 않아도 시를 접할 일이 많아 그랬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동네, 예술인 마을을 예술인 마을이 되도록 묵직하게 지켜주셨던, 막걸리 좋아하던 노인네.
초등학교 옆 길 높다란 담장 너머로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안의 묵은 집에 살던 시인.
친일 행적이니 뭐니 말들을 하지만 노인의 시는 어마어마 하다. 천상 시인이라고 하면 어울릴까?
리듬감... 자유롬게 넘나드는 이야기의 흐름... 구수하고 질박한 말솜씨.... 시란 이런 것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생전에 남긴 시가 900여편이라고 하는데.. 어느 여름 날이 오면 산 깊은 휴양림 통나무집이나 바닷가 소주 파는 민박집 방 바닥에
드러누워 전집으로 읽어봤음 좋겠다. 그렇게 해 보자.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900편에 담긴 정신을 알아차리는 건 다음 숙제로 치더라도 말이다.
생전 펴낸 열다섯권(15편 이라고 하기 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게 왠지 예의일 듯 하니 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 시집에서
몇 편 씩 추려 김화영이란 분이 시선집을 꾸몄다. 그래서 허술하다. 시가 허술한게 아니라 책이, 엮음이 예의없어 보인다.
그가 그리던 하늘... 노 시인은 지금 하늘에서 무슨 구름 같은 시를 짓고 계실까?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
오랜 가난에 시달려온 늙은 아내가
겨울 청명한 날
유리창에 어리는 관악산을 보다가
소리내어 웃으며
"허어 오늘은 冠岳山이 다 웃는군!"
한다.
그래 나는
"시인은 당신이 나보다 더 시인이군!
나는 그저 그런 당신의 代書쟁이구......"
하며
덩달아 웃어 본다.
이 시를 유언처럼 쓰고 노 시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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