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현대문학 6월호>

취몽인 2011. 6. 2. 10:41

 

 

 

 

 

 

 

 

 

현대문학상 수상작들이 실린 6월호

 

컨템포러리를 지향한다는 이 잡지의 컨셉 때문인가? 아니면 현대시가 지향하는 모호함 때문인가?

상을 받은 송승언이란 젊은 시인의 詩는 어렵다. 모호한, 규정되지 않는 이미지를 던진다.

이미지 자체를 감상하라는 뜻인가? 목마름.. 현기증.. 애매함.. 난감함... 답답함.. 이런 것들을 詩에서 느낀다.

시인은 그것을 의도했을 것이지만 나는 불편하다. 나의 불편함을 통해 시인의 詩는 완성된다.

詩는 역시 다분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고 그로 인한 보편성이 결여되어 지극히 보편적인 나같은 사람에겐 어렵다.

 

 

폭력이라는 컨셉에 천착하고 있는 나에게 52년생 김승희 시인이 한 수 가르쳐 준다.

직설적으로.. 또는 섵부른 분노를 바로 드러내기밖에 못하는 어중뜨기에게 고수는 좀 더 깊어지라 훈수하는 듯 하다.

그래야만 폭력이 더욱 폭력스러워지고 분노가 더욱 깊어진다고 가자미 한 마리를 빌어 말한다.

 

 

하얀 접시에 올라온 하얀 가자미 한 마리 / 김승희

 

 

나는

'나는'이라든가 '내가'라든가 하는

말을 잊어야만 한다고

또는 '나의'라든가 '내'라든가 하는 말도 다 버려야 한다고

바다처럼 푸른 식탁보가 깔린

작은 나무식탁 앞에서

하얀 접시에 올라온 하얀 가자미 토막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다

 

이 은은하고 도도한 광채 어린, 이 접시는 속삭인다

흰 살 가자미의 토막, 껍질, 지느러미, 빼낸 창자,

형제자매, 부모, 고향..... 그런 것을 다 복원해낼 수 잇는가,

유언도 없이 잡혀 와 토막 난 가자미 한 마리,

내가 주어가 될 수 없다는 것

나의 소유격도 결국은 다 파도 거품처럼 무의미하다는 것

그렇다면 여기서는 접시가 주어란 말인가?

실향의 접시가, 도마, 푸른 칼자루가 주어란 말인가?

오른쪽으로 두 눈이 쏠려 있는 가자미

 

껍질을 다 벗기우고 하얀 살만 토막으로 접시 위에 올라와 있다

희망의 현실적 근거가 하나도 없지 암ㅎ은가?

희망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갈 데까지 다 간 마음....

접시에 대한 좌절, 몸부림, 굴종이 오고

이 시대에 누가 장편소설, 대하소설을 쓰는가?

있는 것은 몽타주, 토막토막 단상밖에는,

이 은은하고도 도도한 광채

접시 하나가 세계 전체와 맞먹는 것일 수도

그런데 살짝 이가 빠진, 저도 막 금 간 접시 위의 토막,

외부는 언제나 파괴적인 힘으로

개개애게 관여한다

이 하얀 보이지 않게 막 금 간 접시 앞에 놓인 나이프와 포크

앞의 신경증

 

그런 식으로 그날 별이 칼집 난 내 가슴에 소롯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