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석달이 지나 전해 온 윤성근형의 부음..

취몽인 2011. 7. 15. 11:13

 

계단 동인 상윤선배로부터 메일이 왔다.

한참 지난 성근 형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다.

불과 얼마 전 형을 생각하며 시를 썼었는데..... 가슴이 너무 먹먹하다.

상윤 선배의 메일을 목사해 붙여 둔다.

 

 

19회 윤성근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유명을 달리한 날이 4월 24일이니 벌써 석 달 가까운,

부질없는 시간들이 흘러간 셈입니다.


그와의 마지막 통화는 4월초

햇볕이 따뜻한 어느 날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그 날 고통이 너무 심해, 그 고통을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들어,

단지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다시 입원을 하고자 한다며,

그러나 병실이 없어 병원측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며

그 날 오후나 다음 날까지는 입원이 가능할 거라고 했습니다.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저는 어떻게든 이겨내도록 하라며

책이 나오면 한 번 찾아가겠노라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근이는 우리 ‘봄날의 계단에서 그리움에 젖다’

편집위원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투병 초기, 상대적으로 기력이 좋았던 그 시절에는

마포구 서교동 유양호텔 옆, 그의 출판사 사무실에서

편집회의를 가지곤 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 병을 객관화하여 중계하듯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투병은 얼마나 힘이 든지

대장암의 진행 과정에서 자기는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꼭 남의 이야기를 하듯 했습니다. 그것이 윤성근식(式)이었습니다.

그의  말투와 어법에서 저는 늘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가 즐겨 쓰는 ‘이를테면’이라는 말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 나름으로 해부하고 해석한 세상에 대한 그의 의지가 담겨 있었고  

이에 대해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려는

그의 노력과 의도가 담겨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때때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저는 그런 그가 좋았습니다.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입니까? 그런데도 자신과 병을 떼어놓고

객관화하여 남 이야기를 하듯 구구절절 (그야말로 구구절절입니다.

디테일이야말로 윤성근을 윤성근답게 만드는 힘일 것입니다.)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를 통하여  저는

암에 대하여, 암 투병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고통스러움에 대하여 마치 내가 겪는 듯 실감을 하고는

삶의 처연함에 새삼 가슴 한쪽이 아려오곤 했습니다.

눈여겨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문집에 실려 있는 그의 시도

이러한 투병 과정의 고통과 아픔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대장암이 처음 발견된 것이 작년 여름 어느 날이었으니 

그는 발병 후 1년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발견이 너무 늦어 그의 암은 그 때 이미

3기에서 4기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그 시간이

얼마나 짧았을까요? 미망인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임종은 너무나 평안하였다고 합니다.

부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유언도

저는 윤성근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이 윤성근식(式) 고집입니다. 


‘이성적인, 너무나 이성적인’, 아니 이성적이다 못해

철저하게 해부하고 분석하고, 게다가 약간은 씨니컬하기까지 한 그가

작고 직전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에게 신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신이 어떤 분이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보다는

그가 훨씬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편히, 또한 오래 잠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또 그렇게 믿습니다.

이렇게 평화를 새로 얻은 그의 새 주소는

자유로 청아공원 안에 있습니다.

자유로 청아공원 행복관 평화홀 사A05호가 그의 새로운 거처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월간문학’을 통한 그의 출세작 ‘죽은 목각인형의 방문’과

1988년 간행된 그의 세 번째 시집 <먼지의 세상>에 수록된

‘목격된 사람’ - 이 두 편의 시를 말미에 덧붙입니다.

계단 동문 여러분의 건승을 간곡히 기원합니다.

- 17회 김상윤 올림

 

죽은 목각인형의 방문


1

저물녘,

와이샤스 한 장을 빨아 널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기다렸다.

황혼이 바다 하나를 적시면서부터

더 확고한 어둠에 몸이 갇히기 직전

삐거덕 삐거덕

작은 바퀴 움직이는, 걸어놓은 흰 샤스 위에

붉은 나비들이 날아앉고 있다.

점차 너무 오래된 옷자락은 헤어져

구멍이 뚫어지고

비로소 어둑어둑 함몰하는 바다에

교통순경의 호루라기 소리가

일순, 바다를 경직으로 몰아 넣는다.


2

지난 여름의 입술이 걸린

나무기둥을 향하여

손 뻗혀 오는 단단한 가슴팍을 향하여

우리가 다 함께

돌무덤을 쌓은 근처 -

아아, 보인다 보인다 모두 보인다

건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저 텅빈 죽음의 초라한 궤적들.

누가 다스릴 것인가 다스릴 것인가

여분으로 남아 있던 바다마저

쿵쿵 아무렇게나 피를 쏟는데,

나는 끌고온 유모차를 잃어버리고

발을 절며 언덕을 넘어간다.


 

 목격된 사람


토요일 오후 ‘롯데’ 앞에서

당신은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컴백한 장미희처럼 검은색으로 도배한

어느 장의행렬에서 (실제로 우리들 곁에서

죽는 사람은 늘 있는 법이지요)

빠져 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문득 당신은 그곳에 서 있었겠지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다가오는 사람들 그 누구도

당신에게 암말 하지 않을 때

당신은 잠시 잠깐 행복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곳에 잦아 있을 때

당신을 찾아 (아아, 애간장 끓이며)

지구의 또다른 반구에서

애정 결핍증에 허덕이고 있는

‘나’를 알으십니까?

차디찬 겨울바람 속에서

묵은 잎들이 집니다, 저 이름도 무슨 사연도 없는 것들이

하염없이 져 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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