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그녀
어둑한 세렝게티
철갑의 마라강이 튼튼하게 흘러온다
두 개의 등뼈를 따라 강이 잠시 멈추면
쏟아져 달리기 시작하는 누우떼
각자의 방향으로
적의를 잃은 악어
두려움은 덩어리로 뭉쳐 기슭을 오른다
겨울의 등짝을 지나 주머니 깊이 양 손을 찌르고
묵묵히 앞 사람의 허리춤을 따르는 탈출
소리도 없이 끌려 나가는 하루
빨간 입술의 여자
번쩍 돌아보는 얼굴 하나
잠깐 비틀거리다 누우떼는 다시 기어 오르고
그렇지 저 가운데 절반은 암컷이지
느닷없는 각성
이동하는 것들 모두를
무력과 미련의 수컷으로 생각했을까
마른 강을 건너 생명을 잇는 일은 암컷의 몫이거늘
왜 수컷만 강을 건넌다 생각했을까
힘든 것은 수컷이라 생각했을까
가로로 깊이 패인 발자국들
누우들은 모두 평원으로 떠났다
속 빈 마라강은 반짝이는 등뼈를 따라 깊숙히 흐르고
바람이 맴도는 세렝게티에서 아내를 생각한다
그녀가 외로운 건 다 이유가 있었다
2011.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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