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和
2011. 12.22
늘 그랬듯이 별 일도 아닌 걸로 아내와 언성을 높이고 이틀째 대치중이다. 86년에 결혼했으니 꼬박 25년을 한 집에서
같이 살아 온 아내.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산 시간만큼 아내와도 살았다. 인생의 절반. 어른으로 산 인생의 전부를.
그런데도 아직 다툰다.
아내와 다투고 난 다음 날은 힘들다. 가화만사성은 이럴 때 적절하다. 나는 그저 집중력이 떨어지고 저녁 귀가 시간이
불편해지는 정도(?)이지만 대개의 경우 아내는 아프다. 특히 위장이 탈이 난다. 소화가 안되고 심하면 토하고.. 신경성
위장 장애의 대표적 증상을 모조리 겪어야 하는 것이다. 후유증이 이쯤이면 피하는 재주가 있을 법도 한데 우리는 알면서도
잘 피하지 못한다. 무승부로 끝날 치킨게임처럼 폭발을 향한 순간의 질주를 제어하지 못한다. 발화점은 순간이다. 일분만
늦춰 생각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해될 수 있는 말 한 마디가 폭발을 촉발한다. 일단 발화가 이루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
오래 산 만큼 상대의 약점을 우리는 서로 너무나 잘 안다. 오 분 정도가 지나면 둘의 양식은 초토화 된다. 한 명은 분노하고
한 명은 좌절한다. 바뀐 것이 있다면 나의 분노가 최근에는 좌절로 바뀌어 심한 자조로 이어진다는 정도. 현실 탓이다.
한 명은 드러눕고 한 명은 혼 자 술을 마신다.
회복은 더디게 이루어진다. 원상으로 돌려야 한다는 마음은 둘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자존심과 무의식적 계급 의식이
시간을 버티게 만든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다 배척 당하면 이차 폭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무심하다. 아니 무심하려
노력한다. 수 없이 보아온 일이니까. 반복이니까.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까. 섣부른 개입은 전혀 효용을 낳지 못하니까.
불화는 오래 쌓였다. 바싹 마른 먼지처럼. 켜켜히 쌓인 그 불화의 흔적들은 작은 불씨에도 쉽게 불타오른다. 악순환을 낳는다.
털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마음 깊이 쌓여 있으니까. 먼지들은 불신과 단념으로 굳는다.
활짝 웃다가도 일순간 불쑥 솟아 오르는 불화. 우리 부부는 불화를 누전처럼 껴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방법은 있다. 한 사람이 온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무조건 한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다. 凹凸처럼 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서로에게 凹가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남자니까,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가장이니까.. 당신은 아내이니까, 나는 밖에서
힘드니까, 나는 집 아니면 위로 받을 곳이 없으니까.. 말 하다보니 아내측 논리가 상대적으로 더 타당한 것 같다.
아내는 밤새 앓다 빈 속으로 출근했다. 저녁이면 아마도 초죽음이 되어 들어올 것이다. 나는 사과하고 화해를 청해야 한다.
아내는 잠깐 반발할 것이다. 그때를 잘 넘겨야 한다. 무조건으로.... 그래야 내일이 편할 것이다.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