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어디에서 오는가
구층 높이에서 밤의 깊은 걸음을 살핀다
천천히 맑아지는 침묵의 뒤에서 고양이 한 마리 기척에 놀라 골목으로 어두워지고
긴장한 보안등 위에 웅크린 지붕의 숨소리 모두들 납작하게 하늘을 이고 누웠다.
잠든 것들을 덮고 눈뜸을 경계하는 듯 검게 반짝인다. 멀리 비명 조차 제 풀에 녹아
버리는 조용한 무게. 기우는 달은 아주 조금씩 그림자만 남은 하늘을 짚고 일어서고
엎드린 것들은 눈을 들어 주저하는 빛들을 지운다. 꺼지지 못하는 것들은 대부분 길
어디론가 달리든지 달려가고 싶던지. 그 날카로운 욕망을 지켜보는 벽들에도 마저
내려 앉지 못한 침묵들이 사각으로 매달려 있다.
달은 그 새 조금 더 치켜 올랐다.
툭 떨어지는 창 몇 개 지나간 시간에 걸려 쨍그랑 빛을 찢는다. 숨 가쁜 가로등은
이미 영혼을 잃었다. 짓누르는 눈꺼풀 아래로 쥐어짜는 목숨. 밝은 어둠도 있는 법
이다. 머리 위로 달의 어두운 반이 걸릴 때면 눈빛은 더욱 짙어 지리라. 그때는 지붕
을 덮은 장막도 잠든 것들을 두고 일어서고 팽팽하게 매달린 벽 모두 기어 올라 하늘
이 깊어지리. 그때는 잠들지 못한 길들도 깨달으리. 밤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올라
가는 것임을. 하늘은 그저 엎드리고 매달렸던 것들이 일어나는 그림자 휘장으로 펄럭
인다는 것을.
구층 높이에서 발밑이 지워진다. 올라갈 때가 됐다.
2012. 09.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