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젖으면
어스름 무렵 태평로엔 노란 바람이 쏟아진다
해는 차갑게 지워졌지만 어두워지지 못한다
하루는 더러 나부끼고 우우 몰려 가기도 하고,
조급한 발자국을 툭 치고 바퀴 뒤를 재빨리 돌아
서소문쪽으로 사라지는 무리도 있다
방향이 휩쓸려간 거리는 빨간 꽁무니로 채워지고
맴도는 길은 저혼자 달려 남태령을 넘는다
언덕 위에서 소스라치던 나무들 가지들 슬픈 잎들
고개를 넘는 일이 유난히 힘들 때
낯 선 관악산은 검은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다
날벌레처럼 빛을 향해 달려들던 마른 가을들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얼굴을 갈기고 지나간다
느닷없이 저들은 왜 저리 급한가
창틈에 꽂혀 진저리 치는 이는 대답이 없다
한 무리 지날 때마다 빈 자리엔 어둠이 몰려온다
소동은 검은 깊이로 침착하게 멈췄다
솟구치던 가로들도 눈물로 곧추 섰다
쇼파에 깊이 앉아 놀란 하루를 다독거리는 동안
먼 수리산이 거리를 쓸어담고 있다
이야기가 빠져나간 가을 껍질들도 보인다
눈 감은 달 하나가 더듬더듬 깊어갈 때
바닥엔 차분히 내려앉아 입 다문 안타까움들
어디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린다
완고한 창을 젖히자 주룩 흐르는 눈물
아차, 보이지도 않는 어두움이 젖고 있었다
2012. 11. 11 새벽 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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