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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젖으면

취몽인 2012. 11. 11. 02:03

 

 

 

 

 

어둠이 젖으면

 

 

 

어스름 무렵 태평로엔 노란 바람이 쏟아진다

해는 차갑게 지워졌지만 어두워지지 못한다

하루는 더러 나부끼고 우우 몰려 가기도 하고,

조급한 발자국을 툭 치고 바퀴 뒤를 재빨리 돌아

서소문쪽으로 사라지는 무리도 있다

 

방향이 휩쓸려간 거리는 빨간 꽁무니로 채워지고

맴도는 길은 저혼자 달려 남태령을 넘는다

언덕 위에서 소스라치던 나무들 가지들 슬픈 잎들

고개를 넘는 일이 유난히 힘들 때

낯 선 관악산은 검은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다

 

날벌레처럼 빛을 향해 달려들던 마른 가을들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얼굴을 갈기고 지나간다

느닷없이 저들은 왜 저리 급한가

창틈에 꽂혀 진저리 치는 이는 대답이 없다

한 무리 지날 때마다 빈 자리엔 어둠이 몰려온다

 

소동은 검은 깊이로 침착하게 멈췄다

솟구치던 가로들도 눈물로 곧추 섰다

쇼파에 깊이 앉아 놀란 하루를 다독거리는 동안

먼 수리산이 거리를 쓸어담고 있다

이야기가 빠져나간 가을 껍질들도 보인다

 

                        눈 감은 달 하나가 더듬더듬 깊어갈 때

                        바닥엔 차분히 내려앉아 입 다문 안타까움들

어디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린다

완고한 창을 젖히자 주룩 흐르는 눈물

아차, 보이지도 않는 어두움이 젖고 있었다

 

 

 

 

2012. 11. 11 새벽 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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