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팔십이년쯤으로 기억하네
아카데미극장 옆 골목
이층 커피숍에 앉았던 시간은
오전이었던가 오후였던가
그곳에 들어오기전에 뭘 했던지도 모르겠네
어렴풋이 술은 먹지 않았던 것 같으네
어쩌면 술 사줄 사람과 시간을 기다렸는지도
하여간 자네와 난
서쪽 벽에 기대여 놓인 푹 꺼진 의자에 꺼져
몇 마디 말도 없이 세 시간을 마주보고 있었지
그게 가능한지 지금도 미심쩍지만
침묵의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고
자네 또한 대충 기억 난다 진술한 바 있으니
우리의 역사는 전설이 아님이 분명하네
오래 입 다물어 담배 진만 바싹 올라붙은 입을 들고
커피숍을 나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네
자네도 그렇다고 했지만 아마
대백 뒤 황소식당에서 소주를 먹었을 걸세
고갈비에 김치찌개, 국물 졸면 다시 물 부어가며 말일세
그후에도 오랜 세월 자네와 마신 술은 셀 수도 없네
그런데 말일세
나는 그날 그 입다물고 마주보던 세시간을 잊을수 없네
그건 말일세
마누라와 싸우고 사흘 입다문 것과는 다른 참 편안한 침묵이었네
난 그런게 친구 사이란 생각이 드네
서로를 온전히 나눈, 궁금한 것도, 거리도 없는
나같은 너
친구 말일세
안동 칼바위 밑에서 뒤늦은 한학 공부중인 자네
그날 그 내 친구가 실없이 보고 싶네
2014.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