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자유인 노릇 40여일이 지난다,
시린 꽃눈, 잎눈들은 푸르른 함성을 지르며
활짝 웃고 있다.
사는 꼬락서니는 그리 나쁘지 않다.
40일 동안 얇고 두꺼운 책 서른 권쯤을 읽었고
유월에 치를 뜻모를 자격증 시험 2독도 끝났다.
아직 버틸 수 있는 잔고가 있고, 이전 절반 정도의
수입도 있다. 불안해 하지만 아내는 집요한 나의
낙관에 어느 정도 세뇌되어 모서리가 무뎌졌다.
며칠 전부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평생 안 먹던 조반도 먹는다.
다른 약속이 없으면(주로 피하는 편이지만)
아홉시경 집을 나서 내가 좋아하는 산 속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자리에 앉으면 시집부터 펼쳐 한 다섯편
읽는다. 마음이 편해지면 시험공부, 편치 않으면
빌린 다른 책을 읽는다. 주로 시론, 철학, 미학 따위의
책들을 골치아픈 놈, 덜 아픈 놈 섞어가며 읽는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K-mooc 강의를 듣기도 하는데
이 달에 수강 신청한 강의는 "논어", "대학". "중용".
"한국 지성사", "우주천문학" 총 다섯이다.
하루에 한 과목씩 란 시간 정도 투자해서 요일마다
다른 강의를 듣는다. 내용들이 뒤섞여 카오스가 된다.
문제는 소진이다.
불안은 앞을 향해 달려가려 하고, 게으름은 제자리와
자족을 거듭 왼다. 이 둘의 다툼이 심상찮다. 꿈을
꾸기도 하고, 책을 읽다 멍해지기도 한다.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다 닳기 전에 다음 밥벌이를
만들어야 한다. 쉽지는 않다. 역시 노후된 년식이 제일
큰 문제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능동성도 한 몫을 한다.
요 며칠 새는 불안의 공세가 더 세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시간의 역할이지만. 그러니 무거운 책을 읽기가
힘들다. 오래 전부터 별러 왔던 발터벤야민의 책에
도전했다가 반 나절만에 포기하기도 했고 시도 젊은
친구들의 시집을 버티며 읽어내기가 버거워 오래된
시인들이나 편안한 말투의 시인들만 찾는다.
그러다보니 평생 안 읽던 수필을 읽고, 장자를 읽고,
장석남, 문태준 시만 찾는다.
소문도 없이 현실은 목까지 차올랐다.
아무리 목을 쳐도 다시 차오르는 이 놈들은 나를
박약하게 만든다. 얇아지고 얇아지는 매일의 정신.
책을 집어 넣어 버텨도 밀어내는 또 다른 나의 모습.
이 박약으로의 뚜벅 걸음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도서관 창밖으로 곤줄박이 두 마리 창공으로 꽂힌다.
201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