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전 날
사내는 오늘로서 이 세상에서 산 지 딱 55년이 된다. 적잖은 세월을 살았다.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남 겪지 못한 소아마비로 평생 절어도 보고
비교적 똑똑하단 소리도 들었지만 일찌감치 헛 수작하다 계급 상승의 기회는
놓쳤다. 정신 차릴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천성이 야무지질 못해 그야말로
주색잡기과 낭만적 치기에 휘둘려 삼십대를 탕진한 인간. 그 와중에 빚처럼
슬픈 아내가 남았고 깊은 내상을 입은 아이들은 자랐다.
55년을 산 사내가 선 자리는 사회의 뒷 문이다. 나서지 않으려 갖은 궁리를
하며 버티고 있지만 저 문은 곧 열릴 것이다. 그리고 문을 나서면 궁핍이
사자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사내를 맞을 것이다. 마른 작대기 하나도 없이
사자와 어떻게 맞닥뜨릴 것인가? 수 없는 밤을 그 생각으로 보냈지만 답은
없다. 그저 지금껏 살아왔듯이 또 살아질 것이다. 사내의 이 생각은 종교다.
지나온 세월의 부침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답안이며 앞으로를 살게 할 희망인
셈이다.
하지만 문고리가 저만치 보이는 어두컴컴한 통로에 선 사내는 여전히 두렵다.
지금 당장 도저히 성미에 맞지 않는 친구 녀석 밑에 빌붙어 총알받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싫지만 그나마도 용도를 인정 받지 못해 쫓겨날까 전전긍긍한다.
할 일이 없는 가운데 뭘 해야 안잘릴까 하는 걱정, 그러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무력.. 거기에 얹어진 이웃과의 해묵은 불화, 만용의 결과로 얻은 경제적
행동적 제약, 약해진 몸뚱이에 가해지는 가혹한 통증과 부자유 등 등.
생일은 그런 어둠 속에서 다가오고 있다. 저 어둡고 낡은 문과 함께.
2017.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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