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가족 그리고 기억

남자들의 생일

취몽인 2017. 9. 5. 15:08

남자들의 생일



  정확히 기억을 하진 못하겠는데 어제 아니면 오늘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1983년, 올해가 2017년, 34년이 지났으니 생싱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매년 이즈음이 되면 아버지의

생일을 떠올리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9월 1일이 하나 밖에 없는 내 동생의

생일이고 9월 15일이 내 생일이며 앞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생일이 9월 초순경이니

생사를 불문하고 우리 집 남자들 생일이 모두 9월에 있는 탓에 묶음으로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어릴적 아버지 생신날은 소고기국 먹는 날이었다. 생일 파티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흰 밥에 소고기국 각자 한 그릇씩.  생일 선물? 케잌? 그런 건 당연히 없었다. 밥상에

반주가 있었던 기억도 없다. 술을 많이 드신 아버지였지만 내 기억에 집에서 술을 드신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여튼, 아버지의 생신은 소고기국과 등가로 내게 남아있다.

살아 계셨더라면 모시고 좋아하시던 돼지고기 두리치기를 안주로 한 잔 모시고 싶은데

평생 한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와 나는 한 번도 대작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의 생일은 남자들 생일의 전주 같은 날이었다. 그때도 뭐 특별한 건 없었다. 

소고기국 대신 미역국. 그게 다였던 것 같다. 동생은 올해 쉰 하나. 돌아가실 때 아버지

연세와 같은 나이다. 몇 년 전부터 지방을 떠돌며 돈벌이를 하는 중이라 생일이라고

같이 밥 한 번 먹은 기억이 아득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조그만 선물을

사다준 적도 있었던 것 같고.. 몇 번 같이 소주를 나눴던 기억도 있다. 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이 없는 50대 남자의 생일.. 별로 유쾌하진 않을 듯 싶다.


  마지막으로 내 생일. 원래 음력으로 8월 17일, 추석 다음 다음날이다. 명절 끝에 태어난

장남을 두고 부모님은 평생 추것 음식 찌꺼기만 먹게 될 지 모르니 이 놈 생일은 양력으로

하자 정했다 한다. 우리집 태양력의 역사가 나의 탄신으로 비롯된 것이다. 내 생일도 별 볼

일은 없었다. 미역국. 끝. ㅎㅎ 하지만 결혼을 하고 두 딸의 아버지가 되고 집안의 호주

노릇을 하는 요즘은 별 볼일이 생겼다. 딸들과 아내가 선물도 주고 맛난 것도 제법 먹는

의례가 된 편이다.


  이렇게 구월 내내 남자들 생일치레를 끝내고 나면 추석이 다가오고 가을이 깊어 갔다.

그래서 구월은 적어도 우리 집엔 남자의 계절이다. 반대로 여자들은 피곤한 계절일테고..

대신 여자들 생일은 봄에 다 몰려있다. 결혼기념일에 어버이날까지.. 


  하늘이 높아지고 코끝이 선선한 가을이다. 남자들의 계절이다. ㅎㅎ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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