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람마다 주변을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이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은 비슷한 부분이 많을지 모른다.
내 아버지는 삼십오년 전에 돌아가셨다.
내가 대학 삼학년 때였다.아버지는 오래 폐를 앓으셨고 결국 그 병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병 때문에 자주 고통스러워 하셨지만 내 기억으로
당신이 스스로 병원에 가신 건 한번뿐이다.
물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녔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랜 병고에 집안 살림은 넉넉치 않았기에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지불할 병원비를 극구 아끼셨던 것 같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스스로의
병원행에서 당신은 운명하셨다. 돌아가시려 병원에 가신 셈이다.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나 미련한 태도라고 여겼고, 그 결과로 우리 집은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듯 내 나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나이를 넘어선지 몇 년이 됐다.
거울을 보다가, 또는 어떤 습관적 행동을 하다가
문득문득 내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자주 있다. 대부분 살아 계실적에 내가 불편해 했던
모습들이다. 당황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게 부자간의
영향력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어지간히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왠만하면 참고 시간에게 치료를 맡길 때가 많다.
부실한 몸뚱이라 여기저기 통증을 달고 살지만
그냥 별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견딘다.
십년 전부터 잇몸이 부실해지더니 지금은 윗니가
여러 개 빠졌다. 앞니를 브릿지로 걸고 작은 어금니 하나를 임프란트 시술을 해서 오물오물 먹고 산다.
그걸 보고 있던 아내가 빠진 이들 임플란트를
하라 성화를 부렸지만 시원찮은 벌이 탓에 언제나
못들은 척 넘어갔다. 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몇 달 생활비를 치과에 갖다 주는게 영 아닌 것 같았다.
내 아버지처럼...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내가 버티는 동안 아내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탓이다.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것은 본의던 아니던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강요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년 전 내가
아버지에게 가졌던 불편함, 미안함을 내 식구들에게
그대로 전가하고 있다는 생각...
불투명한 앞날은 앞날에게 맡기고 치과를 찾아
견적을 받고 스케줄을 잡았다.
일 년 뒤쯤 바닥난 잔고를 털어 십여년만에 갈비를
뜯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여전히
가난해도 먹는 거라도 제대로 먹는 남편을, 아빠를
보며 미안함을 던 우리 가족들 마음이 회복 되리라
생각하니 슬쩍 웃음이 난다.
아버지, 죄송하지만 전 다르게 살아야겠습니다.ㅎㅎ
'이야기舍廊 > 가족 그리고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고통과 내 짜증의 상관 관계 200106 (0) | 2020.01.06 |
---|---|
개장과 비석 (0) | 2019.02.18 |
남자들의 생일 (0) | 2017.09.05 |
산토리니의 무늬에게 (0) | 2017.08.22 |
딸들에게 141113 (0) | 201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