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한풀 꺽인다는 것

취몽인 2017. 9. 21. 09:39

한풀 꺽인다는 것



  생일을 낀 지난 한 달은 길었다.

말로만 듣던 대상포진은 제법 성가시게 아팠고 여진은 아직도 남았다.

처음 물집이 잡혔던 왼옆구리는 무시로 쑤신다. 오래 갈 모양이다.

무엇보다 갑자기 체력이 많이 떨어진 걸 느낀다. 아침이 무겁고 점심이

지나면 자주 졸리고 저녁을 먹고나면 온 몸이 축 쳐진다.


  꽉 채운 55년, 그동안 잘 버텨온 몸이 어떤 변곡점에 이르렀단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건강을 자신한 적은 없었다. 남들처럼 용맹하게

달려본 적도 없었고 긴 거리를 걷지도 못했다. 어릴적 앓은 소아마비는

남들보다 일찍 돈을 벌 기회를 주긴 했지만 언제나 행동에, 태도에 제약

이었다. 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남들 뒤를 따라 걷고, 등산, 축구같은

모임은 한번도 같이 할 수 없었다. 아, 한 번은 있었구나. 대학 때 교회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를 했었다. 그땐 그럴 수 있었다. 약한 다리지만

젊음이 있어 가능했으리라.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한 것은 17년전이다. 생각해보면 운전은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뚜벅이 시절은 강제로 걸어야하는 시절이었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지하철에서 회사까지, 그리고 중간의 외근들도

허약하지만 잘버텨주는 두 다리로 갈어 다녔었다. 지급 생각하면 그게

내 유일한 운동이었다. 운전은 그 최소한의 운동량까지 내게서 제했다.

그 후 10년 사이 몸무게가 10킬로그램 늘고 약한 다리는 더 약해졌었다.

10킬로그램, 지난 주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먹다 그 웅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의 무게와 부피를 몸에 더얹고 살았으니.... ㅎㅎ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스스로 느끼기에 몸이 이렇게 쇠약해

진다는 것이 늙는 것 아니겠는가. 회복이 느려지고, 시름시름 아픈 일은

마음까지 시들게 한다. 아직은 더 일해야 하고 할 일도 많은데 닥친 일들에

와락 달려들지 못하니 속이 상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의 생각도 있다.

받아들일 건 받아 들여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핸디캡을 조정해서 게임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 아직 속병은 크게 들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몸을

잘 달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따위다.


  주변에 중병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몇 있다. 고통스럽게 병과 싸우고

버티는 모습들을 본다. 모두 용감하게 살아왔던 친구들이다. 아무도 지금을

상상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지금 나를 한풀 꺽는 이 세월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 친구들의 시간은 곧 다가올 것이다. 


 한풀 꺽였으니 다른 한 겹을 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뭘로 새로운 한 겹을 쌓을까?

푸르고 높은 이 가을 꾹 찌르는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나의 겹을 찾는다.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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