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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취몽인 2018. 2. 13. 15:18

77년

 

 

자네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는 일은

쉽지 않았네

가장 뜨거운 해가

헛바닥을 빼물고 지나고 있었지만

정작 그림자의 농도가 더 짙었다네

이미 지나온 길이 아닌가

자넨 그렇게 말할 수 있네

가끔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네 살 때 잘린 손가락의 고통 같은 것

그때 나는 왜 화가 났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네

왜 맨 앞에 서있다가

굳이 맨 뒤로 갔을까

그것도 화를 흠씬 내면서

구남여상 뒷골목을 지나며

사과 한 알을 훔치는 일이 왜 그리 짜릿했을까

그때 자네들은 무던했었네

무던하려고 애썼다고

다른 화를 쏟았다고

다른 것을 훔쳤다고

자네들끼리 딴일로 짜릿했다 말하려는가

그렇지 반고개 언덕이 그때는 높았고

땅골 구비는 깊었지

그게 맞을거야

자전거를 잃어버린 후

남산동 뒷길을 매일 걸으며

골목과 바닥에 새겨졌던거야

뒷걸음으로 뒷걸음으로

그러나 어쩌겠나

이미 이만큼 와서

저만큼 있는 자네들에게 가는 일

되돌리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지만

막 돋은 거웃의 가소로움 같은

낄낄대는 목소리 가슴에 들리니

나도 모르게

그리로 가고 있는 것을

그때로 가고 있는 것을

그것 참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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