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기도

취몽인 2018. 2. 19. 00:47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큰 아들 김아무개

지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

다 원만히 이룰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일 년에 세 번

엄마의 기도는

똑같이 시작했다

해가 바뀌어도

순서가 바뀌지 않았다

 

큰 아들 작은 아들

큰 손녀 작은 손녀

마지막에 며느리

아내는 낮은 서열이 늘 불만이었지만

정작 엄마는 순서에도 없었다

 

작은 녀석이 올해 스물 아홉

근 삼십 년을

제문처럼 주문처럼

새벽마다 혼자서

설날, 아버지 기일, 추석날은

온 식구 앞에서

외어온 기도 그 한결같은 바램

 

올해는 내가 아프니

니가 대신 해라

 

엄마, 아내, 동생, 큰 딸, 작은 딸

서열을 다시 잡은

낯선 기도를 마치자

뒤늦게 들리는 엄마의 아멘 소리

아, 당신 입으로 하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기도

 

그만 죽어야 할텐데

 

또 다른 주문을 남기고

엄마는 동생과 떠나고

핸드폰 뒤져 작년 추석 기도를 듣는다

 

하나님 아버지,

큰 아들 김아무개

지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

다 원만히 이룰 수 있게 도와주시고..

 

아멘이 안나온다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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