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택詩

야간근무

취몽인 2019. 6. 25. 18:27



야간근무

 

 

밤에 일 하는 게 좋다

 

아침 나절

식구들 모두 출근한 후

혼자 느즈막히 일어나

같이 딩구는 게으른 강아지

따뜻한 배를 쓰다듬다

정오쯤

된장찌개에 밥 한 술 비벼 먹는다

다시 침대에 누워

시집 한 권, 에세이 한 권

뒤적뒤적 읽다가

맘 내키면 짧은 글도 쓰고

페북에 헛소리 좀 흘리고

그리다 허리 아플 즈음 일어나

강아지 밥 주고

설거지 하고

대충 씻고

다섯 시쯤 집을 나선다

 

이쯤이면 이미

하루는 왠만큼 살았고

무료한 저녁 시간에 일해 돈 버는

팔자 좋은 사내인 척 할 수 있다

퇴근 시간 밤 시간 새벽 시간

미친 놈처럼 거리를 헤매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다

마지막 한 시간

동쪽이 밝아오는 걸 보며

부족한 수입을 채우는 스릴도 좋다

밤새 지쳐 나른한 몸으로

새벽 버스를 타고

푸른 언덕을 오르는 해체감도 괜찮다

 

무엇보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밤에 일하는 건 그래서 다 좋다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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