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하인리히 뵐

취몽인 2019. 9. 19. 15:16

 

결말을 아는 소설을 읽는 일은 힘들다.

 

1952년. 패전 후의 독일.

많은 것을 잃은 사회는 회색빛이다.

파편이 널부러진 도시에서는

사랑도 발 디딜 곳을 잃어버린다.

 

48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초라한 단칸방과

폐허 속에 구겨진 도시의 골목과 술집

싸구려 호텔을 돌아다니며

쓰라린 삶을 삼키고 뱉는다.

가난이라는 폭력은

사랑도 사람도 집요하게 파괴하고

시선이나 느낌마저 찢어버리는 것.

 

집요하고 일관되게

이 파괴의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이 서늘하다.

 

불과 오륙 년 전.

나와 내 가족이 겪었던 슬픈 무력과 비참의 시간이

떠오르고 며칠 전 전시가 끝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들이 생각나는 소설.

 

역시 나는 소설 취향이 아니다.

그리고 하인리히 뵐은 다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