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외로운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취몽인 2019. 12. 7. 10:43



외로운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송년회 철이다. 서울 사는 고등학교 동기들 송년 모임도 아마 곧 있을 것이다. 이름하여 재경대구고 21회 동기회. 81년에 졸업을 하고 85년에 취직해 처음 시작한 서울 살이. 그 무렵 모임이 처음 시작됐다. 뿌리째 뽑혀 고향을 떠나온 친구들이 서소문 한 귀퉁이 술집에 모여 동기모임을 만들자 한 이유는 아마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외로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던 의구가 앞장을 섰는데 지금 세상 떠난 그 친구를 생각해보면 역시 외로웠던 것 같다. 사회 초년병 시절을 지나고 회사에서 대리 과장을 하던 시절까지 매월 한 번씩 나가 객기도 부리고 술도 마시며 외로움을 지웠다. 세월은 또 그렇게 지나 어느 순간부터 동기모임에 나가지 않은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십 년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송년모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랜 만에 나간 동기모임에는 낯선 얼굴들이 많았다. 낯설다는 표현은 사실 좀 어울리지 않긴 하다. 어차피 다 아는 얼굴들인데 그저 그간 자주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모임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 전에 모임이 이런저런 시절 타령 술타령을 하며 그야말로 어릴적 친구들 투닥거림의 분위기였다면 그날은 뭔가 좀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살펴보니 앉아 있는 친구들 면면이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고위공무원, 대기업 임원, 의사, 교수, 개인회사의 대표 그리고 그들 주변을 맴돌던 좀 과장된 모습의 친구들까지. 당연히 오고가는 대화도 사업이며 투자, 이권, 미래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모임자리에 그 친구들이 중앙을 차지하고 대화를 주도하니 기존의 따라지들은 이야기에 끼지도 못하고 어줍잖게 혼자 또는 둘씩 술이나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이후 동기 모임은 성격이 그렇게 재조정 되었다. 모임 장소도 회사곁 선술집 수준에서 나름 격 있는 음식점으로 바뀌었고 허물없이 떠들고 마시던 모습도 점잖은 쪽으로.. 그 후로 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젠트리피케이션.

  세월은 우리들 모임에 코 넓은 그물망을 치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걸러냈다. 35년 전 서소문 김찌찌개집 골방에서 소주를 마시던 친구들은 거의 다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그물 속에는 펄펄 뛰는 큰 물고기들만 남아 있는 모습. 작은 광고회사를 전전하던 내가 그 그물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후 밴드나 인터넷 카페에서 가끔 모임의 사진이나 이야기들을 보기는 한다. 반가운 이름 반가운 얼굴은 여전하지만 역시 뭔가 내게는 맞지 않는 옷이 걸린 옷걸이 같아 보였다.


 역시 십여 년 전일이다. 대구에 갈 일이 있어 간 김에 친구를 만나 한 잔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친구가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누구랑 지금 한 잔 하고 있으니 시간되면 오라는 전화였다. 몇 통 전화가 계속 되었고 하나 둘 친구들이 그 술집을 찾아 들어왔다. 모처럼 서울서 친구가 왔으니 얼굴도 보고 한 잔 생각도 나서 왔다고들 했다.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한 술자리는 그 자리에서 아홉 시까지 이어졌고 처음 친구와 나 둘만이었던 테이블엔 여남은 명이

모여 왁자했다. 내리 너댓 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어도 별로 취하지 않았다. 그저 즐거웠다. 그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무엇이 그 친구들을 불러 모았을까? 서울서 내가 온 건 별 큰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친구들이 좋아 꾸역꾸역 어둠을 뚫고 모여들었을 것이다. 친구란, 친구들의 모임이란 거런 것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 친구들에게도 채우지 못할 외로움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옛날 귀때기 새파랗던 시절. 볼수록 재수없는 서울 바닥에 뚝 떨어져 사는 게 아슬아슬하고 외로웠던 재경대구고 21회 동기들처럼. 그물을 빠져나간 친구들은 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의구처럼 훌쩍 가버린 친구도 있고, 사제가 됐다는 친구 소식도, 시골로, 외국으로 떠난 친구들도 있다 들었다. 모두들 가슴 속에 담겼던 외로움은 어떻게 했을까? 그물에 걸어뒀을까?


  이삼년이면 우리도 환갑이다. 그리고 부지런히 늙겠지.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면 그물도 낡아 헤어지고 큰 고기 작은 고기 다 빠져 나가고 들어올 때가 올 것이다. 그때쯤엔 다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외로움들이 다시 돌아와 있을테니까.  연어처럼.


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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