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마르지 않는 티셔츠를 입고 / 김이듬

취몽인 2019. 12. 10. 11:50

 

괜히 나는

이 시인에게 빚진 듯 하다.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데

그것도 내발로 찾아가 책 몇 권 사고온 게 전부인데.

미리 가겠노라 예고도 하고

문을 나서면서는 곧 다시 오겠노라 하고

몇 달째 가지 못하고 있다.

가서 사겠다 마음먹었던 시집은 결국 인터넷으로 사서 읽고

언제 갈까. 아, 오늘은 여수를 간다 했지.

그러고 있다.

시인은 왜 책방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의 시집은 모두 사서 읽었다. 한 절반쯤 느끼며..

긴 머리 속 마스카라 속 눈빛이

시인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한 적 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사나움이 그 속에 서려 있다는 느낌뿐.

내가 알 수 있는

그래서 읽은

그의 시에도 그런 짙은 사나움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의

진짜는 아직 난 잘 모른다.

혹시 그게 나의 부채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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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

 

 

밤에 새를 본다

새가 앉는 가지는 조금 움직인다

 

밤에 물에 들어간다

책을 가지고

 

수레에 책을 싣고 빗길을 갔던 날처럼

비닐로 책을 감쌌다

이십 대엔 모든 책에 커버를 씌웠다

 

책을 팔면서부터 책에 들어가지 않는다

철처럼 단단한 선반에는 앉지 않는다

 

지워질 운명

천연이라든가 다이얼이라든가

오래 쓰지 않은 비누에는 사라질 골목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속성은 무엇일까

아래는 물

위에는 공기

 

나는 분해될 난해한 책

당장 신이 읽기에도 난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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