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글로리홀/김현

취몽인 2020. 2. 3. 16:11

 

그를,

시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첫 시집을 찾아 읽었다.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두 달에 걸쳐 하루 한 두 편,

고통스럽게 읽었다.

아직도 남았다.

시집은 두껍기도 하다.

치우지는 않겠다.

곁에 두고 화가 나면 조금씩 읽겠다.

언젠가는 다 읽겠지.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면서.

 

당신의 의도가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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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렴

너에게 마지막 밤이 추적추적 내려올 때

 

너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너는 이야기를 눈처럼 무너뜨리거나 너는 이야기를 비처럼 세울 수 있다

 

그 질서 있는 밤에

너에게 안개 또한 펄펄 내려올 때

들어보렴

맨 처음 네가 간직했던 기도를

 

너의 공포를

너의 공허를

너의 공갈을

 

점점 노래하렴

너의 구체적인 세계는 녹아내리고

너는 우리가 만질 수 없게 있어지지만

신앙과 믿음은 없거나 없어지는 것

그건 얼마나 적확한 죽음의 신비로움이겠니

 

너에게 먹물 같은 첫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한순간 네가 살아 누워 있을 때

 

일 초 후

스물네 시간 후

삼백육십오 일 후

 

결국 쓸모없어질 기억들을

끝까지 기억하렴

 

아침까지 둘러앉은 술고래들을

평화로운 낭독의 데모를

한밤에 나눈 구강성교를

 

그래, 시옷

지난밤 거위 떼처럼

우리는 해야 할 말을 모두 다 했단다

 

침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