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한 세상에 비 내리는 오후
작년에 읽었던 시집을 다시 읽었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페이스북에서 자주 만나
이제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는 시인.
그 가까운 마음이
이전에 읽었던 詩들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궁금했다.
그새 詩들은 좀 더 깊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주름이 더해졌고
소의 슬픔도 한결 그렁그렁하다.
옹이는 안으로 더 웅크리고
모든 옛날의 더께가 두텁다.
詩는 그대로인데
왜 내 마음 속은 짙어지는 걸까?
인연 탓인가? 詩를 대하는 자세 탓인가?
시인은 지금 목하 도모중이다.
하늘을 덮을 포도들과 땅을 덮을 벼의 세상을 궁리하며
실업에게 시비중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 그 통에 시 몇 편 또 잘 익고 있으리라.
어찌 알았겠는가?
시인의 시와 내 졸문이 같은 책에 실릴 줄.
세상도 시도 알 수 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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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괜시리 어룽대는 저 물빛 위에
호영 형님이 아픈 다리를 끌고 평생 꽃밭을 일구는
일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경운기 하나로 저 큰 무논을 써레질하는
일 같기도 하고
어머니가 젖은 짚단에 불을 댕겨 생전 밥 짓던
일 같기도 하거니와,
때론 성자들의 장난과도 같이 아주 서툰 듯 지긋이
아름다운 것이리
사랑은 잠시만 눈을 떼도 흔들리는 못줄처럼
저 물 위에, 괜시리 어룽대는 저 물빛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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