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 송찬호

취몽인 2020. 3. 24. 10:26

 

나는 왜 오래된 시집들을 읽는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파는 시집들이 대부분 오래된 시집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겨우 맴돌고 있는 詩의 세계는 아직 내게서 멀다. 맨 앞에 서있는 詩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어쩌다 엿볼 수 있으면 어김없이 오래된 시인들의 최근 모습들뿐.

따라서 신간 시집이란 건 내게 큰 의미가 없다. 세상에 아직 내가 읽지 못한 詩는 고비사막의 모래알 수만큼 될 것이다. 詩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주변인 처지에서는 할 수 있는 한 그 모래를 세는 일이라도 해서 사구 너머 마른 바다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상당 부분 성취를 이뤘다 평가되는 송찬호시인.

환갑을 막 넘긴 시인이 서른 살 무렵에 펴낸 시집을 읽었다. 아마 첫 시집이 아닌가 싶다.

이십대 후반을 넘어가는 시인은 가난했었나보다. 가난과 싸우는, 그리고 좌절하는 청년이 시집 앞에 있다. 세상은 올림픽 호황으로 조금씩 번들거릴 때에도 시인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그무렵 나는 문학을 하겠다는 뜻을 단호하게 잘라버린 고마운(?) 아버지 덕에 상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자본주의에 흠뻑 취해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문학에 붙들렸는지 가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 가난을 상대로 詩를 앞세워 싸우는 모습들이 있다.

그 다음 시인은 말과 싸우고 있다. 언어, 말, 글. 문학을 이루는 절대 요소들과 대면해서 그 경계를 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세계를 구성 또는 규정하는 말. 시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 시인에겐 반드시 극복하거나 순응하거나 해야할 계단이었을 것이다. 달을 보고, 나무를 보고, 낙타를 생각하며 詩로서 그 벽을 넘는 시인의 모습은 치열하다.

 

지금 시인은 평안하다 한다. 생명 동화를 이야기하는 따뜻하고 깊은 詩를 선보이고 있다. 그 경지는 결국 30년 전 가난과 말이라는 두 절벽과의 싸움을 지내며 얻어진 과실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무렵 술집에서 신용카드나 북북 그어댔던

나는 아직 절벽아래에도 닿지 못한채 옛날 시집이나 뒤적이고 있는게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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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정원 1

 

 

말의 고향은 저 공기 속이다

공기 속을 떠돌아다니는 꺼지기 쉬운 물방울들

바람 속 고정불변의 감옥들

 

말과 사물 사이에 인간이 있다

그곳을 세계라 부른다

드러내 보이는 길들, 그 길을 이어받아

뒤틀린 길을 드러내 보이는 길들

 

도상(途上)의,

영원한 도상에서

 

끊임없이 전달되어지는 문서들

지금도 상호 간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지는 대화들

 

중심을 무너뜨리는

폐허를 건설하는

대화하는!

 

한 점에서

다시 한 점으로 이동해 가는

바람 속 저 고정불변의 감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