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詩 없는 삶 / 페터 한트케

취몽인 2020. 3. 24. 10:28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

소설가이지만 詩를 사랑했다는 사람.

 

하지만 자신은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시집을 내는 일을 한사코 거부했다는 사람.

 

詩들은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선 자리에서, 하루의 끝에서

물끄러미 자신을 또는 주변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써내려간 詩들.

그 속에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하다.

새로운 생각 또는 시각으로 본.

 

글은 詩건 소설이건 결국

탁월하거나 특별한 시각을 가진 이들이

특별하거나 탁월한 문장력으로 써내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어느 정도 그걸 인정한다는

공증 같은 것일뿐.

그의 머리 속은 끝 모를 우주이다.

 

그 증거를 한 편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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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시편

 

 

1.

시에서는 동떨어진 사물들이 함께한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선언이다

 

2.

지금!

말오줌나무숲에 내린 아침 햇살

 

3.

아카시아 가지, 가을하늘의 소용돌이

평화의 가지

 

4.

어제 기차에선 소설 '갑자기 낯선 사람처럼'

오늘 눈밭에선 먼 곳으로부터 물소리

갑자기 근처에서도 들렸고

 

5.

눈사람을 바라보고 있기 힘들 때가 있지

하지만 그 대신 한 아이가 힘찬 발걸음으로

계단을 하나 오르네

 

6.

오전엔 시골 헌병의 자욱한 향수구름

오후엔 불빛 환한 쇼윈도의 유머

 

7.

저녁, 바깥 먼 평지의 기차 기적이

낮 동안 연어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8.

해가 지며 산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낙엽송 너머로 달이 뜬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내놓으니

사람들이 기뻐한다.

 

9.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내놓으면

사람들은 기뻐한다

그런데 기쁨도 다른 걸 내놓는다.

 

10.

박새의 하얀 얼굴,

어둠 속의 한 점

 

11.

여기 멧노랑나비,

작고 노란 책장을 팔락이며

저기 푸른 셔츠로부터

 

12.

알래스카 유콘 마그놀리아 시 너머에서

회전하던 달은 물방아 바퀴였다

 

13.

아침엔 나치의 기장도

가볍게 건너뛰었건만,

저녁엔

철학의 순간이 찾아와

 

14.

'좋음이란 것을 저는 모든 종류의 기쁨과

더 나아가 기쁨으로 인도하는 모든 것으로 이해합니다.'

 

15.

'현실과 완전함이란 것을 저는

똑같은 하나라고 이해합니다.'

 

16.

생각은 활활 타오르지만

애타게 사랑을 구하면서

너를 위한 시 한 편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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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을 쓸 무렵엔

시집을 다 읽지 않았었다.

다 읽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시집의 70%를 지나자

제대로 읽을 시들이 나타났다.

 

그대로 책장에 꽂아두려던 생각을 접고

책상 서랍에 넣어둔다.

 

곧 다시 한 번 읽어볼 것이다. 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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