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연휴가 시작됐다. 나는 중간에 출근을 해야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느긋한 봄날 연휴를 즐기게 돼서 집안 분위기도 오랜만에 느릿한 오전이다. 최근에 각자 독립 분가한 두 딸이 연휴를 같이 지내려고 저녁에 온다고 해 낮 동안 아내와 강아지와 함께가까운 곳에 가서 꽃도 보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올 계획인데시간이 좀 남아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 얼마전 페북에서 김이듬시인이 읽고 있다는 글을 보고 검색해보니 우울증을 앓는 저자가 자연 속에서 기쁨을 찾아 스스로를 지켜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담긴 책이라 했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둘째의 생일이다. 녀석도 살짝 멜랑꼴리를 앓고 있어 힘들어 한다. 생일 선물로 주려고 책을 주문했는데 좀 일찍 왔다. 사실은 일부러 일찍 주문했다는 게 맞겠다. 내가 먼저 읽고 주려고.^^ 내 평생 두 딸에게 늘 미안하고 부족한 아빠라 생각하지만 단 하나 잘했다 싶은 건 어려서부터 책을 읽게 도와준 것이라 생각한다. 겨우 한글을 깨우칠 무렵의 그림동화책부터10대가 끝날 시기까지 나름 꾸준히 책을 사줬다. 책을 고르고 애들에게 건네주기 전에 가능하면 내가 먼저 읽었다. 그리고 속표지에 짧은 메모를 적어 책을 줬다. 아이들은 그걸 좋아했다. 아빠와의 색다른 소통으로 여겼고 그 책을 좀 더 관심있게 읽는 것 같았다. 그런 시간들이 두 딸을 책과 가깝게 지내도록 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마음에 혼자 기분이 좋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다 읽고 속표지에 편지 메모도 쓴 뒤 토요일 생일에 전해주려고 한 켠에 숨겨놓았다.
저자 에마미첼은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 디자이너,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방면에 걸친 학자이자 재주꾼이다. 그런 그녀가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긴 멜랑꼴리를 앓으며 그녀는 그 우울이 자신을 드나드는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고 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방법을 누적시키며 산다. 다행히 그녀는 자연을 잘 알고 그 자연을 통해 고통을 희석 또는 치유하는 길을 찾아냈다. 싹틔우기를 기다리는 풀을 보고, 부엉이와 오목눈이를 만나고, 숲을 걷고, 해질 무렵 한적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무시로 찾아오는 우울에 맞서거나 피하는 모습은 한편 안타깝기도 하지만 부러움이 더 컸다. 자연을, 생명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은 그의 지식에 따라온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랑의 마음 덕분이 더 클 것이라 생각된다. 신은 그녀에게 평생을 괴롭히는 지독한 우울증을 안겼지만 동시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동시에 제공해 동행하며 살 수 있도록 했다. 세상살이란 그래서 살만한 것일게다.
바라기는 내 둘째도 이 책 속에서 제 치유의 길을 떠올릴 수 있음 좋겠다. 가끔씩 멜랑꼴리해질 지라도 고개를 들어 더 밝고 맑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제 나름의 위안과 행복을 느낄 동행을 찾을 수 있기를. 그럴 것이라 믿는다. 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