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야시 사토미라는 여자 배우를 기억하려고 한다. 주인공 이름은 관심이 없고 왠지 꼭 그러고 싶다. 어디서 본 듯한 배우. 이유는 영화를 중간쯤 보고 있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 아내와 같이 본 영화 '안경'의 여주인공이었다. 심지어 영화를 만든 감독도 같은 사람이었다. 약간 촌스러운 신비감을 주는 조연 한 사람까지도 같은.. 우연도 취향을 알아보는구나. 싶었다.
안방에서 책을 보던 큰 딸이 말했다.
'그 영화 일본 국뽕같은 영화래. 핀란드를 구원하는 일본의 문화 따위를 말하는...'
영화는 그 감독이 '안경'에서 그랬듯 별로 대단하지 않은 스토리이다. 핀란드를 빌어 슬로우라이프를 말하는 듯 하면서도 상처입은 사람들의 모습과 치유의 과정 속에 따뜻한 사람들을 배치시켜 놓은 듯 하기도 하다. 역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건 음식이다.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오니기리이건, 루왁의 주문을 건 커피건, 잘 구워진 시나몬크로와상이건..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만드는 모습을 보는 건 늘 위로가 된다.
핀란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들 수 있다. 핀란드에서 살려면 먹고 살 일이 있어야 한다. 내가 먹는 걸 팔아서 살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막상 실천에 옮기면 어떤 일이 인생에 벌어질까?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잘 살게 된다. 카모메식당은 손님으로 가득 차고 상처 입고 깃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그 행복의 중심에 여주인공이 있다. 여유있고, 야무지고, 친절한 고바야시 사토미. 그래서 딸이 일본국뽕영화라 했는지 모른다.
오래전 아내와 홍대앞 미술학원가에서 샌드위치카페를 한 적이 있었다. 홍대 정문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인디문화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최고의 젊은 문화의 거리였고 반대편은 대한민국 미대 입시의 메카였다. 우리는 두번째 메카 수강생들에게 딸기쥬스와 샌드위치 등의 끼니를 팔았었다. 그 거리에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었다. 바로 주먹밥 가게 '카모메' 였다. 얼마 후 홍대 ㅁㄱ대 입시에 실기시험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들렸고 아내와 나는 쪽박 차기 전에 서둘러 폭탄 돌리듯 가게 '칼리포니아'를 넘겼다. 잘 나가는 카모메를 비웃으며.. 얼마전 지나다보니 카모메는 아직 있었다. 칼리포니아는 부동산중개업소가 돼있었다. 카모메가 이겼다.
영화 끝 무렵에 사토미에게 왜 이 일을 하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하고싶다.'
또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한다.
'그 가게는 당신이랑 많이 닮았어요.'
그게 힘이다.
'이야기舍廊 > 책과 문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곁에 두고 읽는 장자 /김태관 (0) | 2020.05.06 |
---|---|
밤 열한 시 / 황경신 (0) | 2020.05.06 |
작은 것이 아름답다 / E.F.슈마허 (0) | 2020.05.03 |
안경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0) | 2020.05.01 |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 (0) | 2020.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