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새 중에 제일 예쁜것 참새, 작야야 돼 오리는 좀 크다 싶고 닭은 좀 무섭다 싶고 참새가 딱 좋아 주먹에 쏙 들어오는 크기, 그게 내가 생각하는 크기, 내가 만만하게 생각하는 크기야 그림 그리는 사람을 만나면 참새나 몇 마리 그려달라고 해야지 나도 이제 낼모레면 노후, 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저 산 밑에 집을 짓고 참새 노는 거나 내다보며 살아야지 조그만 것들이 쪼르르 쪼르르 달려가 무언가를 쪼면 무료도 즐거울 거야 무료도, 행복할 거야 누가 알아 저 작고 예쁘고 앙증맞은 것 몇 마리를 잡아 구워 먹으면 내가 주먹만 해질지 치매에도 안 걸리게 될지 저 작고 앙증맞고 예쁜걸 먹었다는 죄책감도 오래 시달리게 될지 그 죄책감 덕분에 도덕군자가 될지 암만 생각해도 새 중에 제일 예쁜 건 참새, 그런데 나 못간다 참새야 가진 것 없어 못 간다 요새는 네가 사는 시골에도 돈 많아야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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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유홍준시인의 시집.
한 달 전에 샀지만 아껴뒀다 이제서야 읽었다.
시집 앞 시인의 말이 성성하다.
'제지공장을 지나 정신병원을 지나 북천을 지나
백정의 마을 섭천에 와 있다.
말수도 줄고, 웃음도 줄고, 술도 줄고, 시도 줄었다.
더욱 더 또렷해진 건
내 무서운
눈빛뿐'
그러고보니 시집이 오랜만에 나왔다.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사는 일이 바쁜 걸까?
소용없는 궁금함이 일지만 알 수는 없는 일.
사는 일이 바빠 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면 시인에게 그닥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시도 삶보다 큰 의미일 수는 없을테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시는 여전히 시인의 삶 곁의 주름이나 새어 든 빛 같다. 요란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목소리의 울림이다.
그런 말투를 나는 좋아한다. 나하고는 동갑인 시인.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죽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한다.
그때까지 시집 한 세 권 정도 더 봤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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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가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대나무 우듬지가 요렇게 살짝 휘어져 있다
저렇게 조그만 것이 앉아도 휘어지는 것이 있다 저렇게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 있다
새는 보름달 속에 들어가 있다
머리가 둥글고, 부리가 쫑긋하고, 날개를 다 접은 새다 몸집이 작고 검은 새다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창문 앞에 앉아
나는 외톨이가 된 까닭을 생각한다
캄캄하다, 대나무 꼭대기를 거머쥐고 있던 발가락을 펴고 날아가는 새
.
.
* 요즘 이런 저런 생명들의 이름을 몰라 안타까워하는 나는 역시 하수인가?
- 2020. 시인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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