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물러나라.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 1의 계율이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 2의 계율이다.
- . 에리히 케스트너
저자는 잘 모르는 분이다. 이 책을 펴낼 당시 85세 였고, 내 고향 대구에서 나고 자랐으며 이화여대병원에서 정신과 교수로 정년퇴임하셨다는 정도가 책에 나와 있다. 그저 85세 되신 교육자이자 의사 출신 노장이 인생을 어떻게 반추하고 또 지금을, 앞으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이전에 똑같은 동기로 김형석교수의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읽고나서의 씁쓸함을 되풀이 하지 않을까 염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분은 겸손하고 진솔하셔서 읽고 난 뒷 맛이 개운하다.
내용은 평범하다. 인생이란게 결국 끝에 서면 평범할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 대한 약간의 반성과 흐뭇한 추억, 가족간의 사랑, 동기야 어쨌던 열심히 살아왔던 장년의 과정,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생 갈림길의 순간들. 그런 이야기들 속에 이분만의 탈무드 같은 깨달음이나 행복, 지혜같은 글들이 편안하게 씌여있다. 더 나이가 든 후반으로 가면 용서, 이해, 여유, 물러서기 같은 한 걸음 뒤에선 관조의 시선들이 노년의 삶을 이끌고 가는 힘이라는 깨달음과 권유들이 많다. 공감이 가고 배울게 많은 분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책을 굳이 찾아 읽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올해 부쩍 기력이 쇠해지신 노모의 연세는 88세, 몇 년째 요양병원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 계신 장모님은 85세. 배움이나 사회적 성취에서 많은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두 분 어머니의 생각을 비슷한 연배의 다른 분을 통해 짐작해보고 싶어서였다.
담 하나 너머에서 기웃거리는 죽음을 의식하게 될 때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또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그것은 비단 두 어머니의 목전에 닥친 일일뿐 아니라 앞으로 십 년 또는 이십 년 뒤 나의 일이기도 하니까. 미리 그 길을 살펴보고 그때 닥쳐서야 깨달을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알 수 있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해볼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앞서 말한 여유, 자족, 용서, 이해, 물러나 바라보기 같은 것들. 지금부터라도 실천할 수 있으면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일들 아닌가? 일찍 시작하면 더 오래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음을 노인들은 한결같은 경험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듣는 우리가 잠깐 고개를 끄덕이고 금세 제 구덩이로 돌아가버려 제 복을 발로 차버릴뿐..
책 한 권의 가치는 저자의 85년 경험을 몇 시간만에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책을 덮으며 바로 잊어버릴지라도 내 마음 어딘가에 얇은 굳은살로 그 교훈은 남는다. 그 굳은살의 힘으로 우리는 웃을 수 있고 용기를 낼 수도 있으며 나를 비롯한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다. 그게 책의 힘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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