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취몽인 2020. 7. 16. 11:23

.
거의 동시에 두 권의 시집을 읽었다.
한 권은 박정대시인 다른 한 권은 이 시집이다.

두 시집 모두 땅이름이 많이 나온다.
한 권은 대부분 외국, 주로 유럽과 히말라야의 지명들이고 이 시집은 전라남도 장흥 일대의 땅이름들이다.
기억 속에 선명한 땅이름을 많이 가진 시인들이 부러웠다. 한 사람의 넓은 폭이 부러웠고, 이대흠시인의 깊고 짙은 폭이 부러웠다. 후자가 훨씬 더 부러웠다.

깊은 고향이 있다는 것. 그래서 파내도 파내도 흙냄새와 함께 눈물이, 그리움이, 설핏 웃음이 자꾸 나오는 그 정서의 원형이 부럽다. 시집에 나오는 장흥, 자응. 탐진, 북천은 그 깊은 샘의 다른 이름, 다른 표정, 다른 역사이다. 물론 그 샘에서 뭔가를 길어내는 것은 시인의 역량이겠지만 그 샘 자체의 가치를 무시할 수도 없을 것같다. 내 고향 대구 변두리의 샘에서도 뭔가를 길어낼 수 있겠지만 물색이 다르다 싶다.

내내 흐뭇하게, 마음결을 쓰다듬으며 시집을 읽었다.
쓸쓸하기도 하고 걸죽해지기도 하면서 읽었다. 말에 좀더 가까이 가려 애썼다는 시인의 말이 이해가 된다.

이 시집은 내게 부럽고 고마운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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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天冠)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 이대흠 .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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