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중간 정산 같은 시집.^^
시, 뭐 별 거 아니네 싶기도하고
시, 참 오묘하네 싶기도한 시집.
100 편의 시는 모두
이마에 외국시 한 편씩을 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시가 그 외국시에 종속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상의 발판이나 그림자가 될뿐.
외국시들은 달이고
이성복의 시는 그 이마에 비친 물결 무늬다.
달은 중요하지 않다.
무늬가 중요하다.
우리는 무늬를 읽는 것이다.
간혹 달이 아니라 별일지라도
그곳에서 역시 물결무늬를 일으킬 것이고
시는 태어날 것이다.
시인은 이 시들을 쓰면서 '왜 시를 쓰는가?' '시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삶을 살았던 적이 많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헤겔이 말한 대상에 대한 의식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비본질적 질문을 일가를 이룬 시인이 한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시를 쓰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잘보이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시인이 얼마나 많을까? 아니 많을 것이다. 그저 나같은 부류나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시가 너무 초라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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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우리 애기 옷 하나 해주지
나는 생각한다, (......)
다시는 영원히 도로 찾지 못할 것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샤를르 보들레르,
우리 어머니 사촌 여동생, 교사였던 남편은 인민군 노래 가르치다 붙들려가 소식 없고, '오빠, 우리 애 아빠는 어떻게 됐겠어?' '죽었겠지' 무심한 오빠 말에 한 달을 못 앓고 세상 떠나고, 외갓집에 맡겨진 세 살, 다섯 살 아이들, 섣달 그믐날 저희 외숙모 옷 짓는 것 보고 '우리 애기도 옷 하나 해주지' 큰아이 중얼거리더니, 봄 오기 전 시들던 동생 먼저 가고, 그 봄 가기 전에 저도 따라갔다는 이야기, 우리 어머니 해주지 않았으면 있지도 않았을 이야기, 내가 안 해도 세상엔 쌔빌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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