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나는 너다 / 황지우

취몽인 2020. 8. 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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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남산 제1호 터널, 붕괴 직전" 이라고 해도
차량들은 여전히, 태연히,
어쩌면 붕괴될지도 모를 개연성이 있는, 남산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제1호 터널, 그 칙칙하고 컴컴하고 매캐하고 긴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다 뒈져도 나만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건지.

이기심은 얼굴에 철판을 깔게 하고
양심은 가슴에 기부스를 하고

서울 사람들을 세련되게 하는 것은 신경질과 무감각이다.
심장에 맹장염이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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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시인이 1986년 펴낸 세 번째 시집.

'제목을 대신하는 數字는 서로 변별되면서 이어지는 내 마음의 불규칙적인, 자연스러운 흐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말하고 기록하는 모든 형식들에 관심이 몰려 있던 그 당시 나로서는 電文을 치듯, 火急하게 아무거나 詩로 퍼 담으려는 탐욕에 급급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냉랭하다. 活活 타오르는 시를 언제쯤 쓸 수 있을까?'

1952년생 돼지띠 시인들.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
우리나라 현대시 역사에 명백한 칼날을 그은 세 사람.
그들은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노장에 가깝지만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詩는, 정신은 시집에 남아있다. 물론 지금의 정신이 그때와 같은 형식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지라도.
86년이면, 시인의 서른 다섯 시절. 광주의 분노는 포비아로 식었지만 전대가리의 광기가 아직 남아 가슴이 썩어가는 시절. 분노와 좌절과 버거운 현실, 그 부조화가 시집 곳곳에 쌓였다.
아마 52년생 돼지띠 시인들에게 그 무렵은 詩의 장막을 헤치는 시절이었고 그러느라 詩가 무작정 분출하던 시기였는지 모르겠다. 이성복도 황지우도 제목도 없는, 일련번호 아래 목 매달린 詩를 쏟아냈다.
이 시집 또한 그렇고..
그런 해소의 시기를 지나 중견이 되었을까? 제 자리를 잡았을까? 떠날 것을 생각했을까?

없던 길이란게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낯 선 길을 열어젖힌 52년생 돼지띠 시인들, 그들이 비틀비틀 헤쳐나가는 그 낯 선 길을 수십 년 뒤에 따라가보는 詩 읽기도 그리 나쁘진 않다. 무엇보다 그 길에는 아직도 요즘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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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지친 한밤의 100원짜리 삽립빵.
가난한 목수 아들의 살에서 뜯은 빵이여
잔업이 잔업을 낳고
靈魂에 찰싹 달라붙어 안 떨어지는, 利潤이라는 이름의 거머리.
이 피는 포도주가 아니다.
사제 목에 걸린 철십자가에 못 박힌 노동자.
나의 安樂이 너를 못박았다.
이 짐승들아,
가슴을 친다고 그게 뽑혀지느냐.




-황지우.. 1986초판. 2015복간. 文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