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이 없는 것들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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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읽기 시작한 이성복의 시집을 얼추 다 읽었다.
정작 다 읽고 나니 맥이 빠진다. 무환화서 한권 읽은 것 같다.
다시 읽을 일 있을까 싶다. 알 수없는 일이지만..
마라! 마라! 한다. 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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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진해에서 훈련병 시절 외곽 초소 옆
개울물에 흰 밥알이 떠내려왔다 나는
엠원 소총을 내려놓고 옹달샘물을
마시는 노루처럼 밥알을 건져 먹었다
물론 배도 고팠겠지만 밥알을 건져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나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 생에 복수하고 싶었다
매점 앞에서 보초 설 때는, 단팥빵
맛이 조금만 이상해도 바닥에 던지고
가는 녀석들이 있었다 달려드는 중대장의
셰퍼드를 개머리판으로 위협하고, 나는
흙 묻은 빵을 오래 씹었다 비참하고 싶었다
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또 일병 달고 구축함 탈 때, 내게 친형처럼
잘해주던 서울 출신 중사가 자기 군화에
미역국을 쏟았다고, 비 오는 비행 갑판에 끌고
올라가 발길질을 했다 처음엔 왜 때리느냐고
대들다가 하늘색 작업복이 피로 불들 때까지
죽도록 얻어맞았다 나는 더 때려달라고, 아예
패 죽여달라고 매달렸고 중사는 혀를 차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다 나는 행복했고 내
생에 복수하는 것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대한 지 삼십 년, 정년 퇴직 가까운
여선생님 집에서 그 집 발바리 얘기를 들었다
며칠 바깥을 싸돌아다니다 온 암캐가 갑자기
젖꼭지 부풀고 배가 불러와 동물병원에 갔더니
가상 임신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얘기가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내가 훔쳐낸
행복은 비참의 가상 임신 아니었던가 비참하고
싶은 비참보다 더 정교한 복수의 기술을 없다는
것을, 나는 동물병원 안 가보고도 알게 되었다
- 이성복.<아, 입이 없는 것들>문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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