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보이지 않는 것들이

취몽인 2020. 8. 3. 11:30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지나가지 못한다
이를테면 지금 달리고 있는 자유로
눈 아래 보이는 아스팔트를 밟고 갈뿐
통과할 수는 없고
멀리 보이는 검단산이나 그 아래 아파트 같은 것들 또한 뚫고 갈 수는 없다
그저 비켜 가거나 거슬러 가거나 문을 따고 만들어놓은 통로를 지나갈 수 밖에 없다

너도 마찬가지
내 앞에 보이는 너를 어떻게 통과하겠니
부숴지지 않고

하지만 나는 지금도 통과중이다
검단산과 한강 사이 자유로 위를 통과한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통과한다

다만 작은 것들 더 작은 것들
오후의 햇살 5G의 전파 막 도착한 미세먼지 개망초의 하잘 것 없는 꽃가루 중앙분리대에 튕겨진 클랙션 소리... 같은 것들로 가득한
눈앞을 헤치며 통과하는 중이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보이는 것들은 나를 막고
보이지 않는 것들은 내게서 밀려난다

대신
보이지 않는 것들은 나를 침식한다
뺨을 갉고 머릿결을 부식시킨다 이마에 골을 긋고 목구멍에 가래를 쌓고 각막을 할켜 거리를 당긴다

보이는 것들은 예방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저 무방이다

보이는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침략하면서
꾸준히 침략 당한다

늙는다는 건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을
지우는 일일지 모른다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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